[OSEN=오키나와(일본), 최규한 기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28일 일본 오키나와 나하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연습경기를 펼쳤다.삼성은 요미우리를 상대로 최원태를 선발로 내세웠다.경기를 마치고 이승엽 요미우리 타격코치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2.28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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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손찬익 기자]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분, 제가 꿈꾸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감독님이셨다”.
‘국민타자’ 이승엽 요미우리 자이언츠 타격 코치를 키워낸 참스승 백인천 전 감독이 15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 고인의 가르침을 받았던 이승엽 코치는 SNS를 통해 스승을 잃은 슬픔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러냈다.
이승엽 코치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려 “감독님과 저는 정말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며 백 전 감독과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승엽 코치가 프로 무대에서 한창 성장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백 전 감독은 스무 살을 갓 넘긴 이승엽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 이승엽 코치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실행해 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백 전 감독은 달랐다. 눈앞의 목표에 만족하기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이승엽 코치는 “감독님께서는 제가 더 큰 꿈을 꾸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신 정말 소중한 분이셨다”고 했다.
특히 이승엽 코치의 야구 인생을 바꿔놓은 대화가 있었다. 어느 날 백 전 감독은 “너는 어떤 타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이승엽 코치는 망설임 없이 “홈런타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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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백인천 전 감독은 홈런타자가 되려면 한두 가지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날부터 둘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이승엽 코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연습 방법, 혹독한 훈련,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나태해질 때마다 누구보다 엄하게 꾸짖어 주셨던 감독님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돌아봤다.
또 “순진하고 부족했던 저는 감독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조금씩, 조금씩 강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한 프로야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스승이 심어준 꿈은 현실이 됐다.
이승엽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홈런 타자로 성장했다. KBO리그에서 수많은 홈런 기록을 세웠고 이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 백인천 전 감독이 어린 이승엽에게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진출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훗날 그대로 현실이 된 것이다.
[OSEN=오키나와(일본), 최규한 기자]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28일 일본 오키나와 나하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연습경기를 펼쳤다.삼성은 요미우리를 상대로 최원태를 선발로 내세운다.요미우리 이승엽 타격코치가 선수들의 훈련을 주시하고 있다. 2026.02.28 / [email protected]
이승엽 코치는 “그 결과 저는 제가 꿈꾸던 홈런타자가 됐고,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분, 제가 꿈꾸던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감독님이셨다”고 스승을 향한 각별한 마음을 표현했다.
백인천 전 감독은 한국 야구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전인 1963년부터 1981년까지 19년간 일본프로야구에서 선수로 뛰었다. 1975년에는 타율 3할1푼9리로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오르는 등 정상급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국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기록한 타율 4할1푼2리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KBO리그 단일 시즌 최고 타율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