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지. 토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오어지로 흘러든다. 포항시는 오어지 상류에 홍수조절 전용 댐인 항사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연못 ‘오어지’. 며칠째 이어진 가뭄으로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오어지 수면 경계선은 평소보다 저수지 안쪽으로 한참 밀려나 있었다.
오어지를 둘러싼 총 7㎞ 길이의 둘레길을 따라 20여 분 걷자 오어지의 최남단에 도착했다. 이곳도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평소라면 토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곳을 거쳐 오어지로 흘러든다.
기존 계획대로였다면 오어지에는 거대한 댐이 들어서 있어야 한다. 총 사업비 1092억원을 투입해 토함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길을 필요에 따라 차단할 수 있는 ‘항사댐’(저수용량 443만t 규모)을 건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댐의 흔적은커녕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지역 주민들은 폭우 때마다 ‘대형 물그릇’ 역할을 해줄 항사댐 건설을 오래전부터 요구해 왔다. 포항시는 국토교통부가 2016년 추진한 소규모 댐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내면서 이듬해 사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2017년 11월 포항에 규모 5.4 지진이 발생해 댐 붕괴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사업은 장기간 표류했다.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건설 예정인 항사댐 조감도. 사진 포항시
항사댐 건설의 필요성이 다시 떠오른 것은 2022년 포항을 휩쓸어 9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태풍 ‘힌남노’ 때문이다. 오어지가 있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지역에 시간당 최대 101㎜의 폭우가 쏟아졌다. 오어지에서 동해를 잇는 하천인 냉천이 범람해 주변에 큰 피해를 남겼다.
당시 불어난 냉천의 물이 인근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으로 들이닥쳐 7명이 숨졌다. 냉천이 동해로 흘러드는 구간 바로 옆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도 창립 이후 처음으로 전면 가동을 중단했다. 이재민은 2263명에 달했다.
냉천 상류에 항사댐이 있었다면 하천의 수량이 이렇게 급격하게 불어나진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항사댐의 443만t 규모 저수량과 오어지의 저수량 412만t을 연계해 운용하면 하류 지역의 홍수 대응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지. 토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오어지로 흘러든다. 포항시는 오어지 상류에 홍수조절 전용 댐인 항사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힌남노 피해를 겪었던 주민 안정수(28)씨는 “쏟아지는 비에 도로 곳곳이 끊겨 주민들이 고립되고 전기·수도가 끊기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상류에서 물을 조절할 수 있는 항사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씨는 “힌남노 피해를 겪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에게 그때의 피해와 불안은 아직 끝난 일이 아니다”며 “항사댐 건설이 조속히 추진돼 주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힌남노가 포항을 덮친 지 4년이 지났지만 항사댐은 아직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사업의 시급성을 고려해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받았지만, 설계와 시공을 한 업체가 일괄 수행하는 ‘턴키’ 방식으로 발주되면서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입찰은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유찰됐다.
결국 지난 4월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공사 방식을 변경한 뒤 항사댐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착수했다. 계획대로라면 설계용역은 내년 10월 말쯤 완료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냉천 모습.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하천'이지만 집중호우시 물이 빠르게 불어나 범람할 우려가 있는 곳이다. 주민들은 홍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항사댐 건설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석 기자
전임 이강덕 포항시장 재임 동안 절차가 지연되면서 착공도 하지 못한 항사댐 건설은 민선 9기 새 시장의 과제로 넘어왔다.
박용선 포항시장은 지난달 29일과 지난 12일 잇따라 항사댐 건설 예정지에서 현장 점검을 하면서 조기 착공 방안을 논의했다. 최근 현장 점검에는 박 시장과 이상휘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석대 K-water 사장 등도 동행했다.
참석자들은 항사댐을 조기에 착공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 업체가 컨소시엄 등을 구성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포항시는 사업 추진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최대한 단축하고 K-water에는 설계와 동시에 토지 보상이 이뤄져 조기 준공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댐 건설예정지를 방문한 박용선 포항시장(오른쪽 두 번째)과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항사댐 건설 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이상휘 의원실
박 시장은 “최근 집중호우는 짧은 시간에도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재난은 복구보다 예방이 먼저”라며 “여름철 홍수 피해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과 관계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