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달려가던 경기를 TV로 보고 있었다. 푸른 유니폼으로 물든 화면과 함성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기억은 어느새 2017년 가을로 돌아갔다.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관중 속에 나도 한 사람이었다. 플레이오프 최종전을 며칠 앞두고 다저스의 열혈 팬인 아들이 함께 가자고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깜짝 놀랐다.“엄마 표도 이미 샀어.” “얼마인데?” “2000달러.” 순간 말을 잃었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 LA에서 열리는 다저스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다시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엄마랑 꼭 같이 가고 싶었어. 엄마한테 주는 선물이야.” 그 한마디에 더는 사양할 수 없었다. 아들은 내게 평생 한 번뿐인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경기 당일. 오래전부터 갖추어 둔 다저스 티셔츠와 재킷, 모자를 쓰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푸른 물결로 뒤덮인 거대한 구장. 수많은 관중 사이에 앉아 그 자리에 나를 데려와 준 아들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나는 참 행복한 엄마구나.’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아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화답이라 생각했다. 나도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목이 쉬도록 응원했다. 사람들의 환호에 맞춰 일어나고, 손뼉 치고, 두 손을 흔들며 힘껏 소리쳤다. 나의 함성은 선수들을 향한 응원이기도 했지만, 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외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내 오른손등을 ‘툭’ 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던졌다. 홈런공이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얼떨결에 허리를 숙여 손을 뻗었지만 이미 공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순식간에 수많은 손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결국 공은 바로 옆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
조금만 빨랐더라면. 아쉬움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웃음이 번졌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내 손을 찾아온 홈런공이라니. 공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갔지만, 먼저 내 손등에 인사를 남기고 다녀간 셈이었다. 나는 아들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브라보! 홈런공이 엄마 손을 맞추고 갔네. 이것도 엄마 평생 자랑거리다. 고마워, 아들.” 아들은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더 환하게 웃었다. 순간 내 눈에 가장 빛난 것은 홈런공이 아니라 아들의 미소였다.
그날 다저스는 승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에서는 패배한 경기로 남아 있지 않다. 수만 명이 한마음으로 일어나 응원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기쁨과 아쉬움을 함께 나누던 광경. 스포츠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지금도 야구를 보고 있으면 관중의 함성 사이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엄마, 다시 이런 경기를 볼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그날의 티켓은 경기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아들이 건네준 사랑의 입장권은 지금도 내 마음의 문을 열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