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고 미국에서 나갈 수 있는 문을 사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 대부분이 부유층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부유층 사이에서 포르투갈과 몰타, 뉴질랜드 등의 ‘골든비자(Golden Visa)’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이들 나라의 거주권을 얻을 수 있는 제도다. 글로벌 투자이민 업체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미국인의 해외 거주권·시민권 문의는 2024년 1분기에서 2025년 1분기 사이 183%나 급증했다. 또 2024년 전체 신청자는 5년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1000% 이상 늘었다.
‘골든비자’ 취득자 모두가 당장 미국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는 계속 미국에서 일하고 자녀를 키운다. 해외 거주권은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이다. 정치적 양극화와 정책 변화, 세금 부담, 자녀 교육과 삶의 질에 대한 고민도 이유로 꼽힌다. 미국 내 상황이 나빠졌을 때 가족과 자산을 옮길 선택지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을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날 수 있는 선택권’을 사는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묘한 역설이 생긴다. 미국 밖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국 이주의 기회를 기다린다. 갤럽의 202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잠재적 이주민의 15%가 가장 이주하고 싶은 나라로 미국을 꼽았다. 역대 최저 수준이긴 하지만 캐나다(9%), 독일(5%)을 제치고 여전히 부동의 1위다.
더 나은 일자리와 교육 기회를 찾아 미국행을 꿈꾸고, 어렵게 비자를 받은 뒤에는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기 위해 또 수년을 기다린다. 2025년 6월 기준 미국 노동력의 19%가 이민자일 정도로 미국 경제 역시 이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 이주의 문턱은 높아지고 있다. 불법체류자 단속뿐 아니라 영주권과 시민권 심사 및 유학생 체류 관리 강화, 전문직 취업비자 제한 등 정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반면 건설·농업·숙박업 등의 분야는 외국인 노동자 비자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해외 인재와 노동력을 받아들이며 성장했다. 대학에는 세계 각국에서 유학생이 모였고, 실리콘밸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이민자 출신들이 혁신을 이끌었다. 지금도 이민자 인재와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선택 기준은 갈수록 까다로워진다.
그 사이 국경을 사이에 둔 움직임은 엇갈린다. 국경 밖에서는 미국에 머물 권리를 얻기 위해 애쓰고, 국경 안에서는 필요할 때 떠날 수 있는 권리를 준비한다. 누군가에게 미국 국경은 어떻게든 들어가고 싶은 문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열어두고 싶은 문이다.
그렇다고 골든비자 수요 증가만으로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매력 있는 나라다.
아메리칸 드림은 출신이나 배경과 관계없이 미국에서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오랫동안의 믿음이었다. 그 꿈을 좇는 사람들은 지금도 미국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그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 밖에 또 하나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 성공의 상징이 ‘미국에 들어온 후 있는 기회’였다면, 이제 일부에게는 ‘미국 이외 다른 곳을 택할 수 있는 선택권’도 성공의 조건이 된 셈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미국에 들어오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그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왜 다른 나라의 문까지 열어두려 하는 것일까.
미국 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받아들일 것인가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에서 꿈을 이룬 사람들이 왜 국경 밖에서 ‘플랜B’를 찾기 시작했는지도 들여다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