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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집이라서 그냥 버틴다”…34도 찜통에 갇힌 극한직업 [르포]

중앙일보

2026.08.17 13:00 2026.08.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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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진 요양보호사가 오후에 출근하는 B씨의 집. 지난 10일 32도를 기록했다. 최혜리 기자

강소진 요양보호사가 오후에 출근하는 B씨의 집. 지난 10일 32도를 기록했다. 최혜리 기자

오전 기온 30도를 기록한 지난 10일 오전 9시. 경기 성남시 수진동에 사는 12년 차 요양보호사 강소진(65·여)씨는 태평동에 위치한 도보 25분 거리의 한 빌라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도착하니 뜨거운 바람이 훅 끼쳤다. 강씨가 오전 3시간 동안 일할 84세 여성 A씨의 거주지다.

12평(약 40㎡) 크기의 집에서 홀로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A씨는 전기료 절약을 위해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파킨슨병 때문에 보조기구가 없으면 홀로 걷기 어려워 거의 누워있다. A씨를 3년간 돌본 강씨는 “어르신이 원래 에어컨을 못 켜게한다. 2년 동안은 아무리 더워도 벌레가 들어온다고 문을 다 닫고 계셨는데, 올 여름에 겨우 설득해 자석방충망을 달고 현관문을 열어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난주에 방 안 온도가 34도까지 올라가서 열사병에 걸리실까 걱정됐다. 에어컨을 28도로 켜드렸는데 금방 감기에 걸려 이제는 못 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옥상 바로 밑 층인 A씨의 집은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찜통같이 느껴진다. 이날 온도계에 찍힌 숫자는 32도로, 바깥보다 더 더웠다.

강씨는 이 집에 유일한 선풍기 한 대를 A씨 앞에 놓고 주방에서 불을 켰다. 위염이 있는 A씨가 먹을 국을 끓여야 해서다. 불 앞에 서면 머리가 핑 돈다. A씨를 들어서 화장실로 옮기고 온수로 몸을 씻기는 날엔 습기와 열기를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강씨는 “냉동실에 얼려둔 가제 손수건을 목에 둘러가며 그냥 버틴다. 남의 집이라서…”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손 선풍기도 켜기 어려워 강소진씨가 고안해낸 방법은 손수건을 얼려 목에 두르는 것이다. 최혜리 기자

손 선풍기도 켜기 어려워 강소진씨가 고안해낸 방법은 손수건을 얼려 목에 두르는 것이다. 최혜리 기자

낮 12시가 되자 강씨는 곧바로 수진동에 위치한 도보 7분 거리의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부정맥이 있는 88세 여성 B씨가 사는 곳이었다. 이 집 역시 종일 앉아 있는 B씨가 “덥지 않다”고 해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한 대로 버틴다. 강아지 1마리, 고양이 4마리, 새 1마리를 키우는 집이라 마스크를 낀 채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일하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대부분의 방문 요양보호사는 강씨처럼 하루에 두 집을 오가며 일을 한다. 올해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연령은 63.1세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이용자 역시 65세 이상의 노인들로 온열질환 취약계층이다. 이들 중 질환이나 선호, 경제적인 이유로 냉방기를 켜지 않고 지내는 이용자가 적지 않다. 태풍의 영향으로 ‘이중 열돔’이 깨지며 폭염이 한풀 꺾인 10일에도 강씨가 방문한 집은 각각 32도로 여전히 덥고 습했다.


치매가 있는 이용자 중에선 환각·환청 증세로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경기 성남시에서 근무하는 8년 차 요양보호사 주모(69)씨는 치매가 있는 94세 와상 환자 C씨를 5년간 돌봐왔다. 주씨는 “요양보호사가 있을 때는 어르신을 설득해서 창문을 열어놓지만, 혼자 계실 저녁 시간에는 방문 여는 것도 두려워하셔서 거의 문을 닫아두고 퇴근한다. 나는 머리가 띵해도 찬물을 먹고 버티면 되지만, 어르신이 정말 걱정될 때가 많다”고 했다.
강소진 요양보호사가 오후에 출근하는 B씨의 집. 반려동물이 많아 이들까지 함께 돌보고 있다. 최혜리 기자

강소진 요양보호사가 오후에 출근하는 B씨의 집. 반려동물이 많아 이들까지 함께 돌보고 있다. 최혜리 기자

방문 요양보호사들의 폭염으로 인한 고충은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이들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할 주체는 마땅치 않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이용자의 폭언·폭행 등 부당행위로 고충을 겪을 경우에만 소속 기관의 장에게 조치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강씨와 주씨가 소속된 성남의료사회적협동조합 김기명 이사장은 “이용자들이 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기관에 보호사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 요양보호사들 입장에선 주거환경을 개선해달라거나 냉방기 사용을 요청하기 어렵다”며 “기관 입장에서도 이용자 유치가 중요하다 보니 적극 대응이 망설여지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정부에서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 역시 실외 노동자만 적용 대상이라 방문 요양보호사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개정안에는 폭염 작업 시 ▶온·습도계 비치 ▶냉방·통풍장치 설치 ▶작업시간 조정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경우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슷한 노인을 대상으로 돌봄 노동을 하더라도, 방문 요양보호사의 근로환경은 병원이나 주·야간 보호센터처럼 환경을 통제할 수 없고, 표준적이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초고령사회가 되며 노인장기요양보험처럼 사적 영역에서 이뤄지는 공적 서비스가 늘어날 거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의 노동환경 문제를 공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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