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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트렌드] 무음 마우스와 방어적 개인주의

Los Angeles

2026.08.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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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출장을 가서 도서관을 많이 방문했다. 더운 여름 날씨를 피하기도 하고, 요즘은 도서관 건물도 건축적으로 아름답게 짓다 보니 외관을 즐기는 재미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자리마다 놓인 ‘무음 마우스’와 ‘무소음 키보드’를 사용해 달라는 안내 문구다. 컴퓨터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당신도 내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말라”는 강렬한 무언의 압박이 깔려 있다. 작은 클릭 소리조차 용납되지 않는 침묵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극단적 개인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도서관을 넘어 일상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식당과 커피숍은 대부분 키오스크와 테이블 오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단순히 기술적 진보라기보다 타인과 대면하고 소통하는 과정 자체를 ‘피로’와 ‘에너지 소모’로 여길 만큼 삶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반증이다. 감정 노동을 피하고 계산된 거리감을 유지하려는 열망이 매장의 인간적인 온기를 지워버렸다.
 
문제는 이러한 비대면 디지털 시스템마저 한국 특유의 ‘하이 콘텍스트(High-context·고맥락) 문화’ 속에서 설계돼 외국인이 사용법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언어적 설명이 적어도 묵시적인 약속과 눈치로 통하는 사회이다 보니 안내나 구체적인 설명이 생략된 시스템이 수두룩하다. 한국 사회의 규칙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나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친절한 단서조차 없는 냉정한 장벽이 되고 만다. 한국의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재외동포는 현지 내국인과 겉모습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왜 이런 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짜증스러운 표정을 마주할 때 당황스럽다.
 
한국에서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독특한 억양을 자주 느낀다. 젊은 사람들의 영혼 없는 말투는 수많은 갑질 손님에게 시달린 피로감의 반증이랄까. ‘주문 도와드릴게요’, ‘결제 진행하실게요’라고 말을 길게 끄는 억양에서는 정중함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감정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단면이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기에 미국에서 일상적으로 나누는 “How are you?”라는 짧은 대면 인사가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비록 형식적인 안부일지라도 서로 눈을 맞추고 존재를 확인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는 인간적인 온기와 관계의 여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타인을 더욱 기피하는 고립사회로 향하는 현상이 뚜렷해 보인다. 종교적 관점에서 이러한 고립은 인간의 관계성을 부정하는 영적 위기다. 성경은 인간을 홀로 존재하는 원자가 아니라 서로를 품는 관계적 존재로 규정한다. 피해를 주고받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안전할지 몰라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타인과의 불편함을 기꺼이 견뎌내고, 매끄럽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환대의 인사를 건네는 온기야말로 차갑게 고립된 이 시대를 구원할 절실한 신앙적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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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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