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서 초등학교 축구팀 강방수의 등에는 늘 ‘9번’이 박혀 있었다.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 스트라이커였고, 태권도 공인 5단의 다부진 운동 신경을 자랑했다. 제주 최고의 유망주였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선수로 뒷바라지할 형편도 안 되고, 섬 출신이 육지 나가서 성공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소방관 아버지의 현실적인 만류에 소년은 축구화를 벗고 눈물을 삼켰다.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평범한 공무원을 꿈꾸던 그를 다시 흔든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제주 서귀포 경기장에서 브라질 방송국의 캐스터와 해설진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며, 다양한 언어로 자유롭게 세계를 누비는 이들을 보았다. 2003년 그는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 캠퍼스 정치외교학과 입학 허가를 받아 누나와 함께 달랑 1만 달러를 쥐고 태평양을 건넜다. 중고차 한 대 사는 데만 6000달러가 들었을 만큼 빠듯한 유학 생활이었다.
강방수는 한인 교회 축구 리그에서 0-3으로 끌려가던 경기에 투입돼 5골 3도움을 몰아치며 8-3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함께 뛰던 축구팀엔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클래스 A 지망생들이 있었다. 발재간 좋은 그의 콧대를 꺾겠다며 100야드 골프샷 내기를 제안했다. “공 치는 운동이 뭐 다를 게 있겠느냐”며 호기롭게 덤볐던 강방수는 공을 하나도 제대로 치지 못했고, 그날 저녁 삼겹살과 소줏값을 치렀다.
‘지고는 못 사는’ 승부사 기질이 폭발했다. 자신을 이긴 친구에게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1년 만에 76타를 기록하며 기어코 그 친구를 꺾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게 ‘PGA 클래스 A’ 자격증이었다.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는 불투명한데, 희소성 있는 PGA 클래스 A 자격증이라면 한국에서 전문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 싶었다.
도전의 길은 가시밭길이었다. PGA 실습 과정을 밟으려면 골프 업종 취업과 영주권을 따야했다. 그는 일식집에 취업해 스시 쥐는 법부터 배웠다. 밥알을 쥐면 105~110알이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스시 달인이 됐고, 그렇게 영주권을 얻었다. 새벽 5시 골프장으로 출근해 부킹 확인, 카트 관리, 연습장 정비, 클럽 수선까지 하며 이론과 실무를 함께 익혔다.
강방수 박사. 성호준 기자
8년만인 2014년 ‘PGA 클래스 A’ 정회원이 됐다. PGA 마스터가 되려면 클래스 A가 된 후 10년 경력을 더 쌓아야 한다. 그는 쉬지 않았다. 2017년 고려대학교에서 스포츠교육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의 박사논문 《골프 지도자의 변환적인 삶의 여정에 대한 자문화기술지》는 이색적이다. PGA 자격증을 따고 강단에 서기까지, 자신의 삶 자체를 연구 소재로 삼은 자전적 기록이다. 논어의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구절을 빌려, 그는 골프 인생을 몸으로 배우던 ‘행지자(行之者)’, 이론을 파고들던 ‘지지자(知之者)’, 학문으로 깊이 판 ‘호지자(好之者)’, 강단에서 나누며 즐기는 ‘락지자(樂之者)’까지 네 단계로 정리했다.
그리고 지난 7월, 미국으로 떠난 지 23년 만에 그의 골프 오디세이는 정점을 찍었다. 미국프로골프협회 최고 등급인 ‘PGA 마스터 프로페셔널’ 자격을 공식 취득한 것이다.
PGA 마스터 프로페셔널은 방대한 연구, 교육 프로그램 개발 역량, 혹독한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이다. 강방수 박사는 역대 485번째로 이름을 올렸고, 국내 거주자 중에서는 유일한 마스터 프로다. 미국에는 전욱휴 씨 등 한국인 마스터 프로가 2명 있다.
강방수 박사가 한국골프교육협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진 강방수
현재 사단법인 한국골프교육협회(KGEA) 이사장인 강 박사는 국내에서도 PGA 클래스 A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밤엔 스시를 쥐고 새벽엔 골프장 카트를 관리하며 보낸 23년 골프 오디세이를, 후배들은 국내에서 짧게 끝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다음 목표다.
골프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이들에게는 이런 조언을 건넸다. “전신을 이용해 작은 공을 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공을 때리는 게 아니라 막대기로 원심력을 이용해 휘두르는 느낌을 알게 되면, 그 느낌이 이해될 것이다.” 최근 골프 시장 침체에 대해서는 “사기업 골프장의 영리 추구가 심해 사람들이 골프에서 멀어졌다. 미국처럼 공공 골프장이 생겨 가격을 낮추고, 민간 골프장도 그린피를 낮춰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