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눈이 내린다. 슬픔이 쌓이면 그대 가슴에 눈이 내린다. 기구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 ‘기구하다’는 세상살이가 순탄하지 못하고 탈이 많다는 뜻이다. 한평생 평탄한 길 가는 사람은 없다. 뒤로 자빠져 코 깨지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아 허우적거린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날개가 부러진다. 운명의 신은 공평하지 않다. 기분 내키는 데로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태초에 카오스(Chaos)가 있었다. 카오스는 신들을 낳고 에레보스는 어둠을, 닉스는 밤을 낳았다. 운명을 결정하는 ‘모이라이(Moirai)’는 신과 인간 모두의 운명을 관장했다. 그들은 밤의 여신 닉스(Nyx)와 어둠의 화신 에레보스(Erebus)의 딸들로 알려져 있다. 모이라이는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의 실타래를 통해 그의 수명을 재단하고 삶을 지배, 감시하는 여신이다. 세 자매는 다른 역할을 배정받는다.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잣고, 라케시스는 운명의 실을 감거나 짜는 역할을 하고, 아트로포스는 가위로 실을 잘라 운명을 거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영역은 신들조차도 침범할 수 없다. 세상의 질서를 허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트로이 전쟁 때 자신의 피를 받은 영웅 사르페돈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온 파트로클로스의 창에 찔려 죽자 생명을 연장하려 하지만 운명의 법칙을 거스른다는 헤라의 비난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운명은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어도 언제 추락할 지 모른다. 운명을 거슬릴 수는 없어도 방향은 바꿀 수 있다. 오르막은 내리막으로 가고, 내리막 길에서는 다시 올라가면 된다. 고통과 슬픔이 없으면 기쁨의 순간 환호하지 않을 것이고, 절망이 없으면 희망의 내일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운명의 실타래를 감는 것도 푸는 것도 각자의 손에 달려 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 바르르 떤다. / (중략)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 3월(三月)에 눈이 오면 /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 밤에 아낙들은 /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 아궁이에 지핀다’-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색채의 마술사, 동화 속처럼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풍경, 마르크 샤갈의 그림은 밝고 초현실적이다. 사랑과 꿈을 그린 색체의 마술사 Marc Chagall은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화가로 꼽힌다. 샤갈의 작품 속 인물과 동물들은 중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연인들은 하늘을 떠 다니고 지붕 위에는 바이올린 켜는 사람이 등장한다. 도피가 아닌 사랑과 자유의 찬가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샤갈은 유대인 박해와 망명, 아네 벨라의 죽음 등 수많는 상실을 겪는다.
사랑은 우리를 들어 올리고 때로는 땅에 가둔다. 사랑의 법칙에는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샤갈의 연인들은 떠오름과 내려앉은 사이를 떠돈다. 결코 추락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캔버스를 채우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이다.” 샤갈의 어록이다. 샤갈의 연인들은 허공에서 꿈을 꾼다. 전쟁과 혼란 속,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던 샤갈의 작품에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땅에 발을 딛지 못해도 꿈을 꾸는 것인지 모른다. 사랑을 품은 연인들은 추락하지 않는다. 영원을 꿈꾼다. 봄이 오면 불을 지피고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닫힌 오늘을 넘어 세상으로 열리는 문을 두드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