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외모·학벌·스토리 다 갖췄다…영국이 반해버린 육상 여신

중앙일보

2026.08.18 14:00 2026.08.18 22:4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지난 16일 막을 내린 유럽육상선수권에 4관왕을 달성한 에이미 헌트가 손가락으로 '4'를 표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6일 막을 내린 유럽육상선수권에 4관왕을 달성한 에이미 헌트가 손가락으로 '4'를 표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6일(현지시간) 유럽육상선수권대회가 막을 내렸지만 영국 매스컴의 에이미 헌트(24·영국) 띄우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헌트가 매스컴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춘 것은 사실이다. 파리올림픽 여자 400m(4×100m) 계주와 지난해 세계선수권 여자 200m에서 은메달에 머물렀던 헌트는 이번 대회 100m와 200m, 400m 계주, 혼성 400(4×100m) 계주 등 출전한 4개 종목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트랙 4관왕은 이 대회가 시작된 1934년 이후 처음이다.

2022년에 대퇴사두근 힘줄이 완전히 파열되는 심각한 부상을 딛고 다시 일어선 점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당시 거동조차 어려워 어머니가 그를 안아 샤워를 도왔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4관왕 이후 쏟아낸 자신감 넘치는 발언도 눈길을 끈다. “실패하지 않는다면 이길 수 없다(If you don’t fail, then you don’t win)”, “인생은 짧다. 왜 야심을 가져서는 안 되나?(Why not be ambitious?)”라고 했다. 자신의 철학을 두고는 “내가 보여주는 모습, 메시지와 철학은 모두 대담해지는 것이다(My whole persona, my whole message and ethos … is just to be bold)”라고 했다.
혼성 400(4x100m) 계주에서 우승한 후 양팔을 펼치는 세리머리를 하는 에이미 헌트. [로이터=연합뉴스]

혼성 400(4x100m) 계주에서 우승한 후 양팔을 펼치는 세리머리를 하는 에이미 헌트. [로이터=연합뉴스]

헌트의 자신감은 우승 세리머니에서도 드러난다. 200m 우승 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주인공 막시무스처럼 두 팔을 벌리고 “즐겁지 않나요?”라고 했다. 경기 뿐 아니라 자신의 캐릭터까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선수다.

트랙 밖 이야기도 풍부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헌트는 제프리 초서(1343년경~1400년) 등 고전문학에 관심을 보여왔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했다는 이력은 전형적인 육상 스타와는 다른 이미지를 만든다.

외모와 패션도 빼놓을 수 없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체격, 귀걸이와 팔찌, 화려한 네일을 한 채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은 스포츠 스타보다는 패션모델을 연상시킨다. 모델 제의를 받은 적이 있고 나이키와 계약한 그의 상품성은 영국 언론이 반길 만하다.

간만에 등장한 상품성 있는 육상 스타에 영국 미디어는 열을 올렸다. 가디언은 헌트를 ‘금메달의 소녀(golden girl)’로, 텔레그래프는 ‘이번 대회에서 단연 돋보이는 스타(the undoubted star of these championships)’라고 했다. 더 타임스 역시 ‘academic badass(공부와 운동의 신)’, ‘track goddess(트랙의 여신)’ 등으로 그의 스타성을 강조했다. 가디언과 더 타음스, 텔레그레프는 그가 4관왕을 달성 후 “KFC로 자축연을 열었다”는 기사를 따로 쓰기도 했다.

가디언은 헌트가 지난달 육상 1마일 기록을 새로 쓴 조시 커(29), 축구 스타 해리 케인(33)과 주드 벨링엄(23)을 제치고 ‘올해의 스포츠인상(sports personality of the year)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기록만 놓고 보면 아직 세계 최정상이라고 하기엔 이르다. 헌트의 이번 유럽선수권 100m 우승 기록은 11초00. 올해 시즌 최고 기록인 아데자 호지(10초63)와 0.37초 차이다. 200m 결승 기록도 22초19로 올해 시즌 베스트 기록인 줄리언 알프레드(21초51)보다 0.68초 늦다. 그의 개인 최고기록 역시 100m 10초97, 200m 22초08을 기록 중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세계적인 수퍼스타’라는 평가를 받기에는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영국 최고의 육상 스타로 떠오른 에이미 헌트.

영국 최고의 육상 스타로 떠오른 에이미 헌트.

영국의 주요 언론이 헌트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데 반해, 영국에서 육상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번 대회가 열린 버밍엄 알렉산더 스타디움은 최대 2만3000명을 수용하지만 대회 기간 빈 좌석이 적지 않았다. 헌트가 100m 금메달을 딴 날에도 약 1만3000명이 입장해 수용 규모의 60%에도 미치지 못했다. 높은 티켓 가격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영국 육상이 과거 같은 대중적 열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영국 언론이 헌트를 집중 조명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헌트는 경기력뿐 아니라 스토리와 외모, 학력, 개성까지 갖춘 보기 드문 ‘상품성 있는 스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더 타임스는 4관왕 직후 “이제 에이미 헌트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트가 정말 세계를 정복하려면 유럽선수권의 왕관만으로는 부족하다. 주 종목인 200m에서 22초08의 개인기록을 넘어 21초대에 안정적으로 진입해야 하고, 100m에서도 10초대 중반으로 기록을 끌어내려야 한다.

여자 100m 세계기록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가 1988년 세운 10초49, 200m 세계기록은 같은 해 서울올림픽에서 작성한 21초34다. 그리피스 조이너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났지만, 두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김영주 기자 [email protected]




김영주([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