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낯선 이국땅에 남편 하나만 믿고 발을 디뎠다. 내 편은 오직 남편 한 사람뿐이었다. 작은 일 하나까지도 의논하며 살았다.
시집오던 날, 친정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아라.” 나는 그 말을 지켜왔다. 착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의 당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보다 열 살 많은 남편은 어린 색시를 많이 가르쳐주고, 참아주고 도와주었다. 고마운 마음이 먼저였고 순종은 자연스러웠다. 남편이 결정하면 나는 따랐다. 그렇게 사는 것이 부부의 길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예순을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내 주장을 내세웠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일이다. 연말이면 사돈댁에 작은 정성을 전하는 것이 내 기쁨이었다. 그해에는 직접 숄을 떠 선물하기로 마음먹고, 공예품점에서 검은색과 짙은 보라색 털실을 골랐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뜨개질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뜨개질하지 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튿날 남편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내가 하지 말랬지! 당신, 이혼당하고 싶어?”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혼이라니. 40년 가까이 함께 산 사람에게 너무 기가 막힌 말이었다. 억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대들 듯 말했다. “언제까지 당신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아야 해요?” 내 입에서 나간 말이었지만 정작 내가 더 놀라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고 끝까지 대들 용기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했는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적막이 흐르는 부엌에서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은 세차게 뛰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그날부터 나는 남편이 잠든 밤에 조용히 일어나 숄을 완성했다. 세 개의 숄이 가지런히 놓였을 때 그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독립 선언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그날의 일을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국땅에서 서로가 전부였던 세월이었기에, 남편은 내 시선이 털실에만 가 있는 것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무뚝뚝한 남자의 질투가 ‘이혼’이라는 서툰 말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이제 남편은 노쇠해졌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임무는 교대되었다. 지금의 나는 예순의 그 날보다 훨씬 자유롭다. 여전히 남편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만 더는 그의 눈치만 보지 않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즐기며 산다. 지금은 그가 나를 의지한다. 세월은 그렇게 균형을 바꾸어 놓았다.
가끔 실 뭉치를 손에 쥐면 그 보랏빛 숄이 떠오른다. 그날의 작은 반항은 우리 부부 사이에 금이 간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 단계 깊어지는 매듭이었다.
순종만으로는 사랑이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사랑은 이해를 통해 서로의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며 자라는 것임을 나는 그 보랏빛 숄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