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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미국국가와 애국가

Los Angeles

2026.08.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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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윤경중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Oh!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오 그대는 보는가!  새벽에 빛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반짝이는 최후의 희망의 불빛을?)’ 1779년 8월 1일 태어난 프랜시스 스콧 키가 작곡하고 존 스태포드가 작사한 미국 국가 ‘더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Spangled Banner)’의 첫 소절이다. 이 곡은 1931년 3월 연방의회에서 정식으로 국가로 채택되었다.  
 
이 노래의 탄생에는 사연이 있다. 미국독립전쟁 당시 영국군이 철수하면서 프랜시스의 친구인 윌리엄 비너스라는 인물을 붙잡아 데려갔다. 당시 유명한 변호사였던 프랜시스는 친구를 구하려고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의 허락을 받은 뒤 1814년 9월에 포로 교환 구조선에 올랐다.  
 
그런데 이 배는 영국군에 의해 잠시 억류가 됐다. 그런 와중에 프랜시스는 밤중에 영국군이 쏘아 올린 총탄을 봤다. 다음 날 아침 프랜시스는 간밤의 총성을 기억하면서 “our flag was still there(우리의 깃발이 아직 저기에 있네)”라며 기쁨의 소리를 외쳤다. 그리고 귀국하지마자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만들었다.  
 
프랜시스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신앙심이 깊어 찬송가를 작곡하기도 했으며 한때는 목회자가 되려고도 했다.  
 
그렇다면 매년 8·15 광복절이 되면 더 크게 부르게 되는 우리 애국가는 누가 만들었을까? 안타깝게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로 시작하는 가사의 작사가는 미상이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애국가의 작곡가는 그 유명한 안익태 선생이다. 안익태 선생은 평양숭실학교를 수료하고 일본의 국립음악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한 뒤 필라델피아 커티스 음악학교와 신시내티 음악학교에서 첼로와 작곡을 공부했다.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작곡하기 전까지는 ‘올드 랭 사인’ 곡에 맞춰 애국가를 불렀다.  
 
 그런데 동해의 ‘해’를 백두산의 ‘산’보다 높은 음으로 부르는 것은 안익태 선생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음악가들에게 맡길 일이다.
 
아무튼 안익태 선생은 스페인 여성인 타라인 베라와 결혼해 스페인 국적을 획득했으며 마드리드 마용카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안익태 선생은 세계의 이름난 교향악단 200여 개를 지휘했으며 서울에서도 세 차례나 음악제를 열었다. 안익태 선생은 1965년 7월 런던 로열,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초청 지휘자로 마지막 연주를 했으며, 그해 9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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