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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박물관 30년 표류, 시스템 부재 드러내

Los Angeles

2026.08.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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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기 5주기, 그 빈자리(하)]
설명 없는 30년 숙원사업
홍명기 떠나자 동력 약화
사업 완수 가르는 리더십
개인 아닌 시스템 세워야
LA시가 2013년 한미박물관 건립을 위해 50년간 임대료 연 1달러 조건으로 제공한 공영주차장(601 S Vermont Ave.) 부지. 아래 사진들은 그동안 변경된 한미박물관 설계안. 김경준 기자. [한미박물관 제공]

LA시가 2013년 한미박물관 건립을 위해 50년간 임대료 연 1달러 조건으로 제공한 공영주차장(601 S Vermont Ave.) 부지. 아래 사진들은 그동안 변경된 한미박물관 설계안. 김경준 기자. [한미박물관 제공]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은 한인 사회에서 손대지 않은 공익사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사업을 폭넓게 지원했다. 한인단체와 각종 공익기관에 그가 내놓은 돈만 2000만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그의 자금과 인맥, 추진력에 기대던 사업들이 그가 떠난 뒤 동력을 잃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인 사회의 오랜 염원인 한미박물관이다. 한미박물관 건립 운동의 뿌리는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로 건축가 데이비드 현을 비롯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딸 수잔 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 김영옥 예비역 대령 등이 중심이 돼 출발했다. 홍 이사장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공동이사장을 맡았다. 최고액(256만 달러) 개인 기부자이기도 했다.  
 
그가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엔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이 단독 이사장이 됐다. 장 이사장 체제에서 사업은 장기간 지연돼왔다. 2013년 LA시로부터 부지를 확보한 이후 설계가 여러 차례 변경됐다. 그런데도 그 구체적 배경, 풀뿌리로 모은 한인 사회 기부금의 운용 명세 등에 대해 한인 사회가 납득할 만한 설명은 뒤따르지 않았다. 윤신애 전 사무국장과 일부 이사진이 간헐적으로 설명했지만, 이사장이 직접 한인 사회를 상대로 사업 진행과 재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자리는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밀실 운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운영 방식은 비슷한 시기 글렌데일에서 추진된 아르메니안 아메리칸 뮤지엄 사례와 대조적이다. 아르메니안 아메리칸 뮤지엄은 연내 공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지 카르페티안 아르메니안 아메리칸 뮤지엄 이사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투명성은 극도로 중요하다”며 “특히 큰 예산이 투입될수록 책임성과 투명성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단이 커뮤니티 지도자들에게 재정과 공사 상황을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외부감사 결과도 웹사이트에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아르메니아계 구성원 모두가 사업 진행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또 사업이 어려울수록 오히려 빗장을 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커뮤니티에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려 달라. 더 잘하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람들이 들여다보고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사업이 오래 걸리고 비용까지 늘어나면 더 많은 질문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아르메니안 아메리칸 뮤지엄 역시 순탄하진 않았다. 코로나 19와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을 거치며 당초 계획보다 지체되고 비용도 늘어났다. 박물관 측은 당초 전체 예산을 8800만 달러로 책정했지만, 카르페티안 이사장은 최대 9500만 달러까지 사업비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그는 “돈만큼 시간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박물관의 30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사업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투명성이 사업의 신뢰를 지탱한다면, 이를 끝까지 완수하는 건 리더십의 몫이다. 아르메니안 아메리칸 뮤지엄 건립 초기부터 관여한 아디 카사키안 글렌데일 시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박물관 건립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을 꼽았다. 그는 사업이나 커뮤니티에서 실제 성과를 만들어 본 사람에게 프로젝트를 맡기고, 그 사람이 필요한 팀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한미박물관 지도부의 실행력은 검증 대상이다. 지금의 이사회가 실제 건립을 마무리 지을 실행력과 모금력, 정치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한인 사회에 충분한 설명과 책임을 다했는지, 따져볼 문제다. 물론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그쳐선 30년 묵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인 사회의 숙원사업을 누가, 어떤 구조로 끝낼 수 있느냐가 더 근본적인 이슈다.
 
한미박물관 뿐만이 아니다. 홍 이사장이 1999년부터 이끌었던 미주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도 도산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의 작고 이후 이사회와 재정 규모가 줄면서 사업 재정비에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바통을 이어받은 곽도원 회장은 “홍 이사장님 한마디면 수백 명이 움직였지만, 지금은 수백 명을 움직이려면 한 명씩 모두 만나야 한다”며 “홍 이사장님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정치적 네트워크의 공백도 크다. 한 한인 단체장은 “과거 홍 이사장이 정치권과 한인 사회를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각종 공익사업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그를 대신할 구심점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한미박물관은 LA시의 토지 제공을 비롯해 가주와 연방정부 등의 공공자금 지원을 받은 사업인 만큼 정부와의 지속적 협상과 관계 관리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홍 이사장 5주기를 맞아 남겨진 질문은 분명하다. 한인 사회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홍명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원로 한 사람의 돈과 인맥, 추진력에 기대지 않고도 공익사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과 책임지는 리더십을 만드는 일이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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