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필드에 서서 반갑기는 한데, 다들 표정이 너무 어둡네요. 흉흉한 소문만 돌고….”
두 달간의 긴 여름 휴식기를 마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가 20일 충남 태안 솔라고CC에서 개막하는 동아회원권그룹 오픈을 통해 후반기 일정을 시작한다.
무려 두 달 만에 재개된 투어지만 선수권 안팎의 분위기는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휴식기 동안 대회 하나가 슬그머니 사라진 데다, 내년에는 투어 규모가 더 축소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KPGA는 10월 예정됐던 ‘OO 오픈’의 취소 소식을 전했다. 당초 9월 예정이던 인스앤코 인비테이셔널을 ‘어메이징크리 오픈’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 10월로 일정을 옮겼지만, 결과적으로 대회 한 개가 증발했다. 이로써 올 시즌 KPGA 투어는 20개에서 19개 대회로 줄었다. 2024년 22개에서 지난해 20개, 올해 19개로 내리막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SK텔레콤, LG전자 등 굵직한 대기업 후원사들이 잇따라 손을 뗐다.
선수들은 불안해 보인다. 베테랑 문경준은 “프로암에서 동료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다들 근심부터 털어놨다. 대회 취소 소식을 뒤늦게 접한 선수들은 크게 당황했다”며 “국내 상황이 갈수록 나빠지다 보니 당장 2주 뒤 열리는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퀄리파잉 토너먼트(QT)에 응시하겠다는 동료들이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선수들의 ‘탈출’ 움직임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확인 결과, 10여 명의 선수가 JGTO 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본행을 택했다.
이 중에는 올 시즌 KPGA 투어에서 정상에 오른 특급 신예들도 다수 포함됐다. 1차 예선을 면제받은 선수들은 오는 11월 2·3차 예선을 벼르고 있고, 연말 아시안 투어 QT를 노리는 선수들도 줄을 잇고 있다.
이 같은 엑소더스의 근본 원인은 결국 KPGA 투어의 자체 경쟁력 상실에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KPGA는 현재 안팎으로 심각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흥행 부진과 스폰서 이탈로 투어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수년째 이어진 노조 문제와 갈등으로 조직 운영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팬덤을 이끌 뚜렷한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도 뼈아프다.
한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는 “KPGA 투어의 위기는 현장에서 뼈저리게 체감된다. 선수 개인 후원도 매우 어렵고 대회 타이틀 스폰서 유치조차 막막한 지경”이라며 “내년에는 대회가 더 줄어들 것이라는 소문도 파다하다”고 전했다.
현재 KPGA 투어의 총상금 규모는 19개 대회 251억원 수준이다. 31개 대회, 총상금 330억원 규모로 순항 중인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와는 격차가 현격하다. 더욱이 두 달을 쉬고 돌아온 KPGA 투어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또다시 2주간 또 대회가 없다. 골프 황금 시즌인 가을에 KPGA는 이빨이 숭숭 빠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20대 선수는 “두 달 넘게 대회가 없으니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며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선배들의 속은 더 타들어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일본이나 아시안 투어로 떠나는 동료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