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핵무기 57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근거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근접한 수치다. 60기 내외의 핵탄두를 보유는 선제타격을 받은 뒤에도 일부 전력이 생존해 핵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제2격 능력’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의미가 주목된다.
트럼프는 19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서한을 주고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건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와 잘 지낸다. 이는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갑자기 “그는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nuclear weapons)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그런 일이 일어나게 둬서는 안 됐었다. 그들은 절대 그렇게 둬선 안 됐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그렇게 두지 않았겠지만, 그는 핵무기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국면에서는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반복해서 주장해왔는데,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자신이 재선에 성공했다면 북한의 핵 활동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읽힌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57개라는 매우 구체적인 수치를 특정했다는 점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올 1월 기준 북한이 보유한 핵탄두 수를 약 60기로 추산했다. 이에 더해 현재 보유한 핵물질로 최소 30기를 추가로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학자연맹(FAS)도 세계 핵 전력을 분석한 2026년판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을 약 60기로 봤다.
트럼프가 언급한 수치가 전문기관들의 최신 추정치와 부합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가 미 정보기관으로부터 받은 정보 브리핑에서 나온 수치를 토대로 57개를 언급했다는 추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 2019년 2월 ‘하노이 노 딜’로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은)핵시설 1~2곳을 폐기하길 원했지만, 북한은 5곳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나머지 3곳은 어쩔 것이냐’고 물었다”며 회담 내용 일부를 공개했는데, 당시에도 기밀 노출 논란이 이어졌다.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발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더 주목할 대목은 57개라는 핵탄두 수가 갖는 의미다. 핵탄두가 소량일 경우에는 상당수를 정권 생존을 위한 최후 보복용으로 아껴둬야 하지만, 60기 정도 된다면 다층적으로 핵을 쓰는 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전략핵과 한국·일본 및 괌을 사정권에 둔 단·중거리 미사일용 핵전력, 보복용 예비전력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북한은 최근 몇 년 사이 미사일 다종화와 전술핵탄두 개발 등에 골몰하고 있다. 다만 선제공격으로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살아남은 전력으로 핵 보복을 가하는 제2격 능력은 이동식 발사대(TEL)와 지하시설, 지휘·통제 체계 등까지 완결된 생존성까지 갖춰야 완성된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이처럼 구체적 수치까지 거론하며 고도화한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한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북한이 상당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지만, 숫자를 특정한 적은 없다. 이는 곧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에도 북한을 “일종의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해 논란을 불렀다.
이는 결국 북한 비핵화 목표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진다. 트럼프가 1기 때와 지금 북한의 핵 능력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시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SIPRI는 2018~2019년에는 북한이 핵탄두 10~30개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 사이 핵무기 생산 능력이 몇 배가 늘어난 셈인데, 트럼프와 김정은 간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이런 핵 능력 증강을 인정한 상태에서 비핵화가 아니라 동결과 감축 등을 목표로 하는 군비통제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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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목표 질문에 “김정은과 친해” 대답만
트럼프는 이날 오후 북미대화 재개 추진의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고 김정은과의 친분만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과 다시 관여하는 목적이 여전히 비핵화인가, 이번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바이든도 오바마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좋아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