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열린광장] 한국의 4계절이 좋은 이유

Los Angeles

2026.08.19 19:28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차비호 회계사

차비호 회계사

50년 가까운 세월을 미국 샌호세와 로스앤젤레스(LA)에서 보냈다. 잘 알려졌다시피 남가주의 날씨는 천혜의 축복이다. 여름은 더워도 건조하여 쾌적하고, 겨울은 유난스럽게 춥지가 않다. 날씨만큼은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는 완벽한 천국이었다.
 
하지만 그 온화한 햇살 아래서도 나는 늘 무언가를 그리워했다. 계절의 변화가 희미한 그곳에서, 가슴 한구석에는 언제나 또렷한 사계절의 풍경이 보고 싶었다.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에 거주하며 두 번째 여름을 겪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여름은 참 덥다. 습도까지 높아 푹푹 삶아대는 더위 앞에서는 50년 동안 잊고 살았던 땀방울이 온몸을 적신다. LA의 보송보송한 그늘과 상큼한 바람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차를 몰고 지방을 오가며 창밖을 바라볼 때면, 이 무더위마저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톱만 한 모들이 보였던 논들은 지독한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머금더니 어느덧 짙고 무성한 초록빛으로 변했다. 이제 한두 달만 지나면 저 푸른 들판은 거짓말처럼 고개를 숙인 황금빛 평야로 바뀔 것이다. 땀을 쥐어짜는 뜨거운 여름 햇살이 사실은 벼를 영글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양분이었음을, 차창 밖 풍경이 나에게 소리 없이 가르쳐준다.
 
생각해보면 내 삶의 계절도 비슷했다. 1990년 미국 국세청(IRS) 세무감사 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사투를 벌였던 수고로운 여름날이 있었기에, 베테랑 전문가로서 결실을 보는 황금빛 가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붓는 여름날 창가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봄날 온 거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벚꽃의 향연, 가을날 붉게 타오르는 단풍, 그리고 겨울날 조용히 세상을 덮는 흰 눈…. 비록 여름은 덥고 겨울은 매섭게 춥지만, 변화무쌍하게 몸과 마음을 자극하는 사계절이 있기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더 깊이 체감하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만 매일이 비슷한 캘리포니아의 날씨를 뒤로하고,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제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고국의 사계절 품에 안겨 살아가고 있다.
 
비 내리는 여름날, 땀을 닦으며 다가올 황금빛 들녘을 기다리는 이 순간마저도 내게는 50년 만에 되찾은 소중한 삶의 입체감이다. 나는 앞으로도 한국의 사계절을 참 좋아할 것 같다.

차비호 / 회계사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