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개봉한 지 10년도 넘은 영화들이 넷플릭스 상위권 차트에 오르면서 역주행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화제를 모은 역주행 대표작들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 [사진 각 영화사]
2007년 개봉한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워’가 19년 만에 넷플릭스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OTT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디워’는 지난 10일 넷플릭스 영화 부문 글로벌 6위에 올랐다. 20개국 톱 10에 진입했고,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순위가 2위까지 치솟았다.
‘디워’는 한국 설화 속 이무기를 소재로 한 SF 판타지물이다. 전설의 재현을 꿈꾸기 위해 여의주를 찾는 악한 이무기 ‘부라퀴’ 무리들이 LA를 뒤덮고, 이들과 맞서는 인간들의 악전고투가 스토리다.
2007년 개봉 당시 흥행과 평가는 흥미롭다. 극장 개봉 후 ‘디워’는 국내에서 840만 명 안팎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개연성 없는 서사, 어색한 CG, 과장된 연기, 조악한 편집 등으로 영화의 완성도 면에선 혹평 받았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 ‘아리랑’이 웅장하게 깔리면서 심형래 감독의 심경이 자막으로 깔리는 부분을 두고는 “개그맨 출신 감독이 독학으로 CG를 익혀 할리우드에 도전한다는 인간승리 스토리를 내세워 작품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당시 TV 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서 진중권 문화평론가 등을 비롯한 평론가들이 작품성을 강하게 비판하자, 온라인에서는 이에 반발한 대중과 극렬 팬덤 간의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이 엉성한 CG로 ‘디워’는 2007년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시각효과상을, 2008년 대종상 영화제에서 영상기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계의 CG 수준을 감안하면 아마도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CG의 완성도보다 국내 CG산업의 한계에 도전한 실험정신에 박수를 쳐준 게 아닐까. 아무튼 ‘디워’는 여러 모로 논란이 많았던 ‘문제작’이었다.
송강호·신세경 주연의 ‘푸른 소금’. [사진 각 영화사]
최근 1~2년 사이 넷플릭스에서 역주행하는 영화들이 꽤 있다. 2011년 개봉했던 송강호·신세경 주연의 영화 ‘푸른소금’도 지난달 30일 기준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영화’ 3위에 올랐다. ‘시월애’ ‘그대 안의 블루’ 등 감각적인 영상미로 인정받았던 이현승 감독이 연출했고, 송강호를 필두로 신세경·천정명·김민준 등 한창 주목받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개봉 당시 관객 동원은 전국 77만 명 정도로 흥행에는 실패했다. 평론도 후하진 않았다. 블루와 초록의 색감을 감각적으로 사용한 이현승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미장센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서사의 개연성 부족과 통쾌한 느와르 액션이 아쉽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커트 머리의 신세경 리즈 시절 모습이 보기 좋아서” “송강호가 로맨스 연기를?” 등의 후기가 역주행을 이끌었다.
이 외에도 최근 넷플릭스에선 ‘비키퍼(2024)’ ‘진범(2019)’ ‘크리스마스 캐럴(2022)’ ‘한란(2025)’ 등이 역주행했다. “이런 영화가 있었나?” “감독과 주연배우는 누구지?” 할 만큼 낯선 영화들이다.
이런 역주행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우선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시청 이력과 취향을 바탕으로 콘텐트를 추천한다. 특정 영화가 새로 입고 되면 메인 화면 배너나 추천 탭에 오르고, 개봉 당시 해당 작품을 몰랐던 세대나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구작’이 ‘신작’처럼 여겨진다. “이런 것도 있네, 일단 틀어볼까?”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완성도’와 ‘재미’가 별개라는 점도 역주행 이유 중 하나다. 집에서 심심풀이로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OTT 시청자들에게 작품의 완성도는 크게 중요치 않다. 돈과 시간을 들여 일부러 극장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버튼 하나만으로 무심하게 선택할 수 있는 OTT 콘텐트는 오히려 가벼울수록 좋다. 서사가 복잡하고 무거운 작품보다 이야기가 직관적이고 자극적인,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옛날 액션·괴수·코미디 영화가 킬링타임용 팝콘무비로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작품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망작’ 꼬리표는 역설적이게도 호기심을 부추기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 결과,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혹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라는 판단이 들면 그 후기가 SNS 등에서 바이럴 되면서 재평가와 재시청이 확산된다.
김수현 주연의 ‘리얼’. [사진 각 영화사]
시청자의 호기심은 미디어와 SNS 커뮤니티 안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슈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지난해 배우 김수현이 주연한 영화 ‘리얼’이 넷플릭스 차트 3위까지 오르면서 역주행했다. 갑작스레 ‘리얼’이 주목받은 것은 김수현과 고 김새론의 유족 간 진실 공방 여파가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가수 겸 배우 고 최진리(설리)의 유족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당시 설리의 오빠는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김수현과 이 영화의 감독인 골드메달리스트 이로베 대표에게 ‘베드 신’ 촬영 시 있었던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결국 ‘리얼’은 “도대체 어떻길래?”라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으로 역주행했다.
2년 전 발매한 곡이 최근 역주행 중인 아이돌 그룹 리센느. [사진 더뮤즈엔터테인먼트]
특정 이슈로 촉발되는 역주행 현상은 K팝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얼마 전 아이돌 그룹 리센느의 2024년 발매곡 ‘LOVE ATTACK’이 발매 후 약 2년 만에 음원차트에서 상승하며 역주행했다. 멤버 원이가 개인 유튜브에서 했던 사투리 “~노”를 두고 정치판에서 설전이 벌어지면서 벌어진 결과다.
그때는 별로고, 지금은 재밌다? 대중의 관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때는 안 보였던 게, 지금은 보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