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램리서치 로보 챌린지’ 본선 대회가 열렸다. 전국 5개 권역 예선을 거쳐 선발된 고등학생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갈고닦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역량을 발휘했다. 사진 램리서치
노란 바퀴가 달린 손바닥만한 로봇 자동차 위로 고등학생 50여명의 진지한 눈빛이 쏟아졌다. 지난 13일 열린 ‘램리서치 로보 챌린지’ 현장에서다.
이날 학생들은 초음파·적외선 센서와 아두이노(코딩으로 센서·모터 등 전자장치를 제어하는 기판)가 달린 로봇이 장애물 트랙을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완주하느냐를 겨뤘다.
똑같이 만들어진 로봇도 바퀴 마모도나 바닥 마찰력에 따라 실제 주행 능력은 제각각이었다. 길을 헤매거나 범퍼카처럼 벽에 박힌 채 헛바퀴만 도는 로봇이 속출하는 가운데 1위를 차지한 건 경기 운중고 3학년 김효성(18)군.
어릴 적 프린터를 뜯어보고 교내 코딩동아리 ‘알고리즘’ 활동을 하며 전기전자공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온 김군은 “완벽해 보이는 코드도 막상 적용해보니 변수가 계속 튀어나왔다”며 “수없이 테스트하고 실패할 때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2위 이서현(17)양 역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열린 ‘램리서치 로보 챌린지’ 본선 대회. 코딩한 자동차 로봇들이 정해진 경기장에서 완주를 하고 완주 여부와 충돌 횟수, 주행 시간, 코딩 점수 등을 포함해 점수를 매겼다. 사진 램리서치
잘 자란 공학 유망주가 실전 무대에서 한 차례 껍질을 깨고 성장하는 것. 글로벌 식각 장비 1위 기업인 램리서치가 이 대회를 여는 이유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단순 공정 교육을 넘어 로봇·인공지능(AI)·수학·물리 등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 전반으로 영토를 넓히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당장의 채용을 넘어 미래 산업의 토대가 될 기초공학 인재의 저변을 뿌리부터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6월 1차 예선을 마친 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신민기(17·민족사관고 2학년)군은 성큼 성큼 박준홍 램리서치코리아 대표를 찾아갔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신군은 박 대표에게 AI가 반도체 산업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지금 뭘 준비해야 할지를 물었다.
뜻밖의 당찬 예비 공학도를 마주한 박 대표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현장의 수많은 변수를 직접 풀어나갈 사람의 역량이 절실해진다”며 “어릴 때부터 STEM에 대한 재미와 문제 해결 역량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초·중·고 STEM 교육에 직접 뛰어드는 건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업계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13일 국제올림피아드(수학·물리·생물)에서 메달을 획득한 한국 대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삼성 관계자는 “미래를 이끌 인재들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도 지난 1일 청소년 AI 교육행사인 ‘하인슈타인 올림피아드’를 열었다. 로이터는 반도체 설계기업 시놉시스의 청소년 캠프 사례를 소개하며 “심각한 저출생 속에서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지속하려면 어릴 때부터 STEM 교육을 대폭 강화해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관람객들이 최신 AI 모델 ‘키미(Kimi) K3’를 공개한 중국 AI 기업 문샷 부스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중국은 STEM 교육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AI 모델 ’키미 K3‘를 내놓은 스타트업 문샷AI의 양즈린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수능인 가오카오(高考) 성적 대신, 올림피아드 수상 이력을 앞세운 무시험 전형 ‘바오쑹(保送)’을 통해 칭화대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이공계 진학률이 19%대(2022년 기준)에 머무는 일본 역시 ‘신기술 입국(新技術立国·과학기술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는 정책)’ 기조 아래, 지역 초·중·고의 이공계 교육에 인근 대학을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국 국가과학위원회(NSB)는 ‘비전 2030’ 보고서에서 “인재는 국가의 번영과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라며 “첨단 기술 경쟁력을 지키려면 초등 단계부터 체계적인 STEM 교육을 실시해 ‘잃어버린 아인슈타인(Lost Einsteins)’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