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에서 바다 수영을 하다가 사고로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이 입적했다. 76세.
명진 스님은 1950년 충남 당진에서 출생했다. 19세 때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다. 성철 스님이 “불교 공부를 하려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반발심이 들어 성철 스님 문하를 떠났다. 75년 순천 송광사에서 첫 안거를 하고, 해인사ㆍ봉암사ㆍ용화사ㆍ상원사 등의 선방에서 40안거가 넘는 수행을 했다.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은 선방 수좌 출신으로서 종단의 민주화 운동에도 기여했다. 자승 총무원장과 각을 세우며 정치적 풍파를 겪기도 했다. 중앙포토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불교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도 맡았다. 94년 종단 개혁회의 상임위원, 2006년에는 강남 봉은사 주지를 맡았다. 당시 1000일 동안 산문 출입을 금한 채 매일 1000배씩 절을 한 ‘천일기도’로 유명했다.
명진 스님은 자승 전 총무원장과 처음에는 ‘절집의 의형제’처럼 지냈다. 해군으로 복무하던 동생이 군함 침몰 사고로 사망하자, 명진 스님은 절집에서 만난 자승 스님을 친동생처럼 여겼다. 둘 사이에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윈 ‘동병상련’도 있었다.
명진 스님은 전국 선방을 돌아다니며 수행자로 지냈고, 자승 스님은 ‘정치 9단’으로 불리던 은사인 정대 스님을 모시며 종단 정치판에서 입지를 키워갔다. 선방 수좌와 종단 민주화 투사의 면모를 겸한 명진 스님은 2006년 서울 강남의 봉은사 주지를 맡아 천일기도를 하며 ‘조계종 차기 지도자’로 부상했다.
이때 자승 스님이 봉은사로 명진 스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총무원장에 출마할 뜻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동생으로만 여겼던 자승 스님이 뜻밖의 제안을 하자 명진 스님은 “네가 (총무원장에) 출마하면 나도 출마하겠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때부터 둘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 주지를 맡을 때 명진 스님은 매일 1000배를 하는 천일기도를 했다. 중앙포토
자승 스님은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해 결국 당선됐다. 당시 ‘강남 총무원장’으로도 불리던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의 갈등과 대립은 갈수록 더 커졌다. 자승 스님이 종단의 여당 수장이고, 명진 스님은 야당의 지도자처럼 서로 정적(政敵)이 됐다. 종권을 장악한 자승 총무원장은 강남 봉은사를 아예 조계종단의 직영 사찰로 바꾸어버렸다.
종단 직영 사찰의 주지 임명권은 총무원장에게 있었다. 자승 스님이 ‘정적 1호’가 돼버린 명진 스님을 계속 봉은사 주지로 놔둘 리가 없었다. 명진 스님은 결국 2010년 11월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쫓겨난 셈이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당시, 명진 스님에 대한 국정원 사찰 문제 등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충북 제천의 월악산 암자 등지로 물러난 명진 스님은 이후에도 “템플스테이나 문화재 관리 비용이 총무원장의 통치 자금처럼 변했다“고 지적하며 자승 총무원장에 반기를 드는 활동을 이어갔다.
또 명진 스님은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날 때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동안거에 들어갔다. 결재 중에는 산문 출입을 금한다. 그런데 고(故) 리영희 선생의 49재가 있자 산문 밖으로 외출했다. 명진 스님은 봉은사 1000일 기도 중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자 산문 밖으로 나갔다. 당시 명진 스님을 인터뷰하며 “그게 수행자의 자세인가”라고 물었더니 “산문을 나설 때는 한없이 미안했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규칙을 어긴 것은 대중에게 잘못한 일이다. 참회하는 마음이다”라고 답한 바 있다.
명진 스님은 본지 인터뷰에서 "나는 영원한 철부지, 영원한 사춘기이고 싶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2017년 4월 대한불교 조계종은 “명진 스님이 종단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명진 스님을 제적해 승적을 박탈했다. 출가한 승려에게 승적 박탈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당시 총무원장은 자승 스님이었다. 명진 스님은 법원에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제적 처분 무효 판결을 받았다.
명진 스님은 솔직하고 담백했다. 봉은사 주지를 맡을 때도 누가 찾아와 삼배를 하면, 늘 마주 서서 맞절을 했다. 본지 인터뷰에서도 “출가 수행자로서 다른 건 그다지 욕심이 없는데, 명예욕만은 내려놓기 힘들더라”고 거리낌 없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봉은사 주지에서 물러난 뒤에 마주 앉아 “명진 스님은 아직도 사춘기라는 말이 있다”고 했더니 “봄이 되기 전에 핀 꽃이 철부지다. 철을 모른다(不知)는 뜻이다. 나도 시도 때도 모르고 퍼붓고 있으니 철부지다. 사춘기의 순수성이 어디에 있나. 고발과 도전이다. 나는 영원한 철부지, 영원한 사춘기로 살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그렇게 ‘영원한 사춘기’를 갈구하던 명진 스님이 바다에서 뜻밖의 사고로 입적했다. 바다 너머 적멸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평화를 누리시길 바란다.
명진 스님은 "내가 봉은사에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천일기도로 쌓아 놓은 힘이 있었는데, 그걸 허무는 게 아까웠다. 봉은사를 통해 한국 불교를 개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대한민국 불교계의 큰 어른을 떠나보내게 된 슬픔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눈다”며 “평등과 평화, 중생을 향한 자비의 마음을 품고 살아오신 스님의 삶과 뜻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추모했다.
명진 스님의 장례는 대한불교조계종과 출가 본사인 법주사, 시민사회단체 등이 중심이 돼 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른다. 서귀포의료원에 안치된 법구(法軀ㆍ스님의 시신)는 유가족 동의 등을 거치는 대로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운구될 계획이다. 봉은사에 분향소가 마련되고, 영결식은 25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