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올여름 새로운 기상 용어가 생겼다. 최고기온 40도 이상인 날을 뜻하는 ‘혹서일(酷暑日)’이다. 일본 기상청이 국민 공모를 거쳐 이름을 정했다. 40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8년 이후 거의 해마다 관측됐지만, 이제는 35도 이상의 ‘맹서일(猛暑日)’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진 것이다.
일본을 오래 보다 보면 흥미로운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사회현상이 나타나면 그것을 부를 이름부터 만든다는 점이다. 고독사, 8050문제, 초고령사회, 과로사, 선상강수대가 그렇다.
‘고독사’가 대표적이다. 혼자 살다 숨진 뒤 오랜 시간이 지나 발견되는 죽음은 이름을 얻으면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문제가 됐다.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이런 죽음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지자체의 안부 확인과 예방사업도 늘어났다. ‘초고령사회’는 2007년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1%를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고령화의 심각성을 표현하는 말이 되면서 의료·돌봄·연금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현실도 ‘8050문제’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복지정책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기후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띠 모양의 비구름을 ‘선상강수대’라 부르기 시작했고, 예보와 대피 체계에도 이 용어가 자리 잡았다. 이번 ‘혹서일’은 폭염을 개인이 견뎌야 할 날씨가 아닌, 사회가 대비해야 할 위험으로 인식하게 한다.
생각해 보니 우리도 초고령사회, 고독사, 과로사, 8050문제, 선상강수대를 그대로 쓰고 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사회 언어가 한국의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 된 셈이다. 이름 하나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름이 있어야 보이지 않던 변화가 보이고, 함께 대응할 대상도 선명해진다. 새로운 시대일수록 새로운 이름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