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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타임머신] 폼페이 최후의 날

중앙일보

2026.08.23 08:08 2026.08.2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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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서기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무렵, 경천동지할 사건이 벌어졌다. 17년 전 큰 지진을 일으켰던 활화산이 기어이 다시 불을 뿜었다. 맑았던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고 땅은 걷기 힘들 정도로 흔들렸다.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 것이다.

화산은 막대한 화산재를 뿜어냈다. 공중으로 분출된 마그마는 순식간에 식으면서 부석(浮石)이 되었다. 유독 가스가 안개구름이 되어 낮게 깔렸다. 그 모든 것이 북서풍을 타고 동남쪽을 향해 쏟아졌다. 헤르쿨라네움·스타비아에·오플론티스, 그리고 폼페이가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왔다. 피해자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역사학자들은 최소 2000명에서 5000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은 역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화산 폭발 중 하나다. 화산재에 송두리째 묻힌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헤르쿨라네움은 고대 로마의 중요 항구이자 교역로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폼페이는 17년 전 지진 피해를 딛고 새롭게 부상하고 있던 대도시였다. 1만~2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던 지역이 화산재에 파묻혀 일종의 타임캡슐이 됐다. 화산재 속의 빈 구멍에 석고를 부으니 대피하지 못한 이들의 몸이 고스란히 복원됐다. 폼페이 유적은 16세기 말 건축가 도메니코 폰타나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오늘날까지 발굴과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사진).

베수비오 화산 서북부의 항구 미세니움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해군 함대사령관 대(大) 플리니우스 또한 희생자 중 한 사람이었다. 37권에 달하는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 『박물지』의 저자였던 그는 화산이 우산소나무처럼 분화하고 있다고 받아적게 했다. 주변인들은 피신을 권했지만 “행운은 대담한 자를 선호한다”며 화산 쪽으로 배를 몰았고 피해자 구조 작업을 벌이다 현장에서 질식사했다. 그의 탐구 정신과 헌신을 기억하기 위해 후대인들은 하늘 높이 재를 뿜어내는 화산 활동을 ‘플리니식 분화’라 부르고 있다. 막대한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지만, 과학적 탐구 정신과 용기로 극복해 나가야겠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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