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활주로에 K2 흑표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가 전개되고, 김포공항 앞 롯데몰에는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이 설치된다. 반포 한강공원에는 천궁 미사일 포대가 숨어 있다. 장갑차 수십대가 홍대입구를 거쳐 성수동을 향해 움직인다. 시내 한복판에서 공포탄이 터지고, 잠실 종합운동장엔 수십명의 병사들이 치료를 기다리며 쓰러져 있다. 여의도 공원에는 AH-64E 아파치 가디언 공격헬기가 착륙한 뒤 미사일을 장전하고, 사당역 사거리 공영주차장에선 K2 전차가 급유를 하고 정비를 받는다.
쑹산공항 입구를 봉쇄하기 위해 철조망을 설치하는 대만 육군 공병부.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제2차 한국전쟁을 다룬 비디오 게임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사’의 한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얼마 전 끝난 군사 훈련을 마치 한국에서 일어난 것처럼 상황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바로 지난 5일부터 14일까지 대만을 뒤흔든 ‘한광(漢光) 42호’ 훈련이다. 대만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한광훈련의 현장을 직접 체험한 내용과 현지 군사 전문기자·군사 전문가와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는 이 훈련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앞두고 을지 자유의 방패(UFS) 훈련을 축소해서 진행했던 우리의 모습과,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설에 대비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
‘상륙 봉쇄’가 아닌 ‘상륙 후 저항’을 목표로
━
한광훈련은 대만의 대표적인 군사훈련이다. 올해까지는 중국의 상륙작전을 봉쇄하고 격퇴하는 시나리오로 진행됐다. 하지만 중국 해군의 급격한 성장과 군사력 강화,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광훈련의 시스템과 내용을 송두리째 바꿨다.
쏭산공항 진입로를 경비하는 대만군.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기본적으로 상황설정이 달라졌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고 선전포고를 하고 병력을 동원하는 시나리오 대신,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중국이 ‘회색지대 전략’으로 수개월동안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하고 대만 주변 근해를 봉쇄하며 대치하던 도중, 급작스럽게 훈련 병력이 기습 공격을 하는 상황을 상정했다.
이 때문에 모든 훈련의 목표는 현실적이면서도 절박했다.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이 대만 본토에 상륙하는 것을 완벽하게 막지 못한다는 상황을 전제하면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만 상륙이 곧 전쟁의 종결이 되지 않도록 처절한 저항을 준비하는 것에 가까웠다.
우선, 수도 타이베이(臺北) 시내를 봉쇄하고 차단하는 실전적 시가지 방어 훈련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타이베이로 진입하는 최단 경로인 단장(淡江)대교나, 쑹산(松山)공항 앞 지하차도 등과 같은 곳에 중국군의 기갑부대나 공중 강습 부대가 확보하려 할 경우를 대비해 파괴하기 힘든 장애물과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대만 전역에선 기동 중인 지상장비와 항공기들이 ‘공격 후 전투력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타이베이와 가까운 타오위안(桃園) 교외의 사찰 근처 주차장에 별안간 대만 육군의 CM-32 윈파오(雲豹) 장갑차 여러대가 드론 경계자세를 취하더니, 미국제 허밋(HEMTT) 급유트럭이 주차장에 들어왔다. 급유트럭이 급유 준비를 마치자 중국 공군의 공습을 피하려고 건설자재로 덮여 있던 M1A2T 에이브럼스 전차가 튀어나와 빠르게 급유를 마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주차장에서 긴급 급유훈련을 하는 대만군 M1A2T 전차.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헬기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으로 치면 일산 호수공원이라 할 수 있는 산주후 생태수변공원(山豬湖生態親水公園)의 풀밭엔 별안간 UH-60 블랙호크 기헬기가 비상 급유탱크와 몇 개의 박스를 빠르게 떨구고 사라졌다. 곧 지상에서 안티드론 건과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물자를 수습하고 AH-64E, UH-60, OH-58D 카이오와 정찰헬기가 풀밭에 내려앉았다. 지상 병력들은 능숙한 동작으로 헬기에 급유하고 70㎜ 하이드라 로켓, AIM-92 스팅어 공대공 미사일을 장전했다. 급유와 무장 장착을 마치는 시간은 불과 7분 남짓. 중국군이 헬기 기지를 공습하고 추적하는 상황을 가정해 야전 기지인 전방 무장·연료 재보급소(FARP·Foward Ammo and Refueling Post)를 운용했던 것이다.
미사일 부대 훈련의 취재는 정말 까다로웠다. 대만 공군은 텐공(天弓)-3 지대공 미사일과 슝펑(雄風)-3 초음속 지대함 미사일을 한광훈련 때 각지에 전개했는데, 불과 두 시간 남짓한 시간마다 미사일 포대를 설치했다가 철수하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움직여 몇 번 취재에 허탕을 쳤다. 이 모든 것이 다 중국의 우세한 미사일 전력과 공군력이 공격하는 상황에도 반격을 위해 생존해야만 하는 냉엄한 현실이 반영됐다.
━
실탄 사용보다 중요한 각본없는 훈련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만 국방부는 한광훈련에서 단 한 발의 실탄도 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광훈련 기간 동안 미사일을 발사하지도 않았다. 실탄을 사용하지 않아 중국이 훈련에 대해서 반발하는 명분도 줄이고, 실탄 사격을 배제한 대신 실탄을 제외한 보급·이송·기동·점령·장비 조작에 집중했다. 총격이 필요한 상황이 있을 땐 공포탄을 사격했다.
전투부상자처치) 훈련을 하는 대만군.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실탄을 사용한 실무장 훈련은 실전 연습에는 좋지만, 안전관리에 따른 비용과 어려움이 늘 따른다. 시내 곳곳은 물론 항만과 공항이 운영 중인 상황, 무엇보다 민간인이 길을 걷거나 일을 하는 도심지에서 작전해야 했기에 공포탄만 사용하는 훈련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탄 사용훈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위기에 대응하고 인원을 배분하는 실무적 작업이다. 가령 8월 11일 타이베이대학 강당 인근에서 진행된 전투부상자처치(Tactical Combat Casualty Care·TCCC)훈련의 경우 전투 중 부상자 발생, 부상자 엄호, 부상자 분류·응급처치 훈련을 진행했다. 실제로 TCCC 훈련에 필수적인 대량출혈환자 지혈, 기도확보, 순환관리, 저체온증 예방 관련 조치를 시늉이 아니라 실제로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환자만 가짜일 뿐, 군복을 잘라서 출혈점을 찾거나 기도확보 조치가 이뤄졌다.
훈련 과정을 참관하는 부분에서 놀라웠던 점은 예비군의 적극적 참여였다. TCCC의 경우 의무 지휘관을 제외한 대부분이 예비역이 참가했는데, 실제 병원에 근무 중인 인원을 활용해 실전성을 극대화한 것은 물론 의료인의 현장 지식과 의무 사관의 야전 응급처치 지식을 공유하는 모습도 보였다.
여기다 야전 지휘관이 임기응변을 강조해 상부 지시 없이 실행하라고 강조한 점도 놀라웠다. 대만 국방부는 이번 훈련을 ‘유상정, 불극투(有想定, 不劇透)’라고 설명했다. ‘상황 설정은 있지만, 핵심은 알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휘부가 언제 어떤 위협이 훈련 상황에 부여할 것인지 알리지 않기 때문에 훈련 인원이 알아서 대응하는 과정을 연습할 수 있었다. 중국군이 참수작전 등 지휘부를 궤멸해도 각 야전부대에서 계획에 따라 작전하는 능력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
━
안전사고와 반대여론에도 공개 훈련을 고집해
대만에서도 한광훈련에 대한 비판여론이 상당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훈련이지만, 불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은 대만에도 있었다. 대만 현지 언론인
EBC의 20일 기사에 따르면 대만 공군이 수변공원에서 대공 미사일 포대를 전개했는데, 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난입해 물병을 던지고 난동을 부렸다. 중국 대응훈련에 대비한다며 10일과 13일 7개 현(縣)의 무선통신망을 끊은 뒤 긴급신고를 유지하는 훈련을 벌였는데, 시민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재보급을 위해 긴급 착륙 중인 대만군 AH-64E 아파치 가디언 헬기.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훈련 과정 동안 사고도 났다. 5일 훈련 첫날 F-16V 전투기가 야간에 출격하려다 활주로를 이탈했고, M60A3 TTS 전차의 비상탈출 해치가 떨어져 시민이 주운 일도 있었다. 민간 화물차가 포탄을 옮기다가 48발의 포탄이 도로 밖으로 굴러 떨어져 폭발물처리반(EOD)이 출동한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이런 사고 때문에 중국은 한광훈련을 조롱했고, 대만 내부에서도 정치적 논쟁거리가 됐다. 중국 매체는 한광훈련 동안 숏츠(Shorts) 영상으로 대만군이 실전에서 싸우지 못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중국 네티즌은 대만군을 딸기군으로 놀리는 댓글을 올렸다. 대만의 야당인 국민당은 한광훈련이 도심지 한복판에 전차와 장갑차를 동원하고, 공포탄을 쏜다며 ‘훈련은 가짜고, 진짜는 계엄’이라며 민진당 정부를 비난했다.
그렇지만 대만군의 선택은 ‘훈련의 전면적 공개’였다. 대만은 이번 훈련에서 최초로 부대 동행기자(Embedded Media) 제도를 채택해 언론이 대만군의 훈련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취재하는 것을 허용했다. 다만 취재 영상과 기사는 보안 검토 후 다음날 보도하는 방식이었다. 부대 동행기자에 뽑히지 않은 기자와 시민도 훈련 과정 동안 전면적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차단선이나 단속 없이 모든 부대 훈련에 대해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릴 수 있도록 허용했다. 외국인인 필자에게 대만군 방첩 담당자는 “훈련 사진은 찍을 수 있으나, 작전 지역이나 전개구역은 보안을 지켜달라”며 짧게 당부할 뿐이었다.
헬기를 호위하려고 안티드론 건을 들고 경계 중인 대만군 .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대만군이 한광훈련을 단순한 전투기술의 연마가 아닌 일종의 중국을 상대로 한 인지전(Cognitive Warfare)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대만 시민이 직접 훈련 현장을 방문해 사진과 영상을 찍고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면 중국 측이 만드는 한광훈련 비판 영상이나 조롱 영상을 반박할 수 있었다. 다만 동행기자에 제외된 미디어가 선발 과정의 불공정성을 제기하고, 대만 국방부가 동행기자 미디어에게 제공한 정보나 자료로 후속 보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디어 간의 갈등도 있었다.
━
한국도 대만처럼 독자 북한 대응 훈련 준비해야
━
이번 한광 42훈련에서 대만이 준비하고 작전한 내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UFS 훈련은 구조적으로 ‘각본 있는 훈련’에 가깝다. 사전에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각 부대가 역할을 수행하고, 통제부가 상황을 부여해도 그 범위와 시점이 예측 가능하다. 대만의 '유상정, 불극투’ 방침대로 시나리오는 주어져도 그 세부 전개는 예측 불가능해야만 한다.
포대 전개 후 철수훈련중인 톈공-3 대공미사일.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더 심각한 문제는 올해 UFS 훈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로 후반부 반격 연습이 취소되고, 야외기동훈련(FTX)도 대폭 줄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군 4성 장군(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의 미래연합사 사령관 역할 수행 연습도 취소됐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태다.
대만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였다. 각본을 없애고, 시간을 늘리고, 민간을 끌어들이며, 통신 마비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다. 훈련은 하나의 시나리오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한국군은 전작권 전환을 앞둔 시점에, 연합훈련 축소를 외부 변수로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오히려 이 상황이 한국군 독자적 실전 훈련 체계를 강화해야 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야전에서 스팅어 미사일 재장전 훈련을 하는 대만군. 타이완=김민석 통신원
☞저자 소개=김민석은 미국에 본사를 둔 에비에이션 위크(Aviation Week)의 한국 특파원 겸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이다. 여러 매체에서 방위산업·국방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방위산업 투자 안내서인 『K-방산에 투자하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