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공동체상영을 통해 관람한 정신질환 당사자와 그 가족들. 상영 시간 동안은 총 57석인 좌석이 꽉 찼다. 최혜리 기자
“다큐의 연출은 참 좋았습니다. 가족들의 고민이 잘 담겨 있어서요. 그런데 하나 빠진 것이 있습니다. 조현병 당사자인 마사코의 시선입니다.”
지난 22일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화제의 일본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본 위은솔(32·여)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조현병 발병기를 지나고 있다고 밝힌 위씨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센터장이다. 그는 “가족과 동료들이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내가 겪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줄 때 상태가 개선되는 것을 느낀다. 영화를 보면서 가족들이 마사코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고 소감을 더했다.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 배급사인 엣나인필름에서 운영하는 영화관 아트나인에는 다큐를 본 관람객들이 자신의 감상을 적어 붙인 큰 판넬이 있다. 최혜리 기자
이날 위씨를 비롯한 약 60명의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이 영화관에 모여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눴다. 자신의 내밀한 경험은 물론, 다큐가 담지 못한 질문과 현재 한국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공동체상영을 주최한 단체 중 하나인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재은 사무국장은 “조현병에 관련해서는 의료계의 입장이 자주 공유되곤 한다.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의견을 나눠야 할 필요성이 느껴져 함께 다큐를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권 사무국장 역시 조현병이 있는 50대 아버지를 둔 20대 딸이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한국에서 지난달 29일 개봉한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작품이다. 1983년, 의대에 재학 중이던 20대 초반의 누나에게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며 생긴 일을 동생의 입장에서 20년간 찍었다. 한국 개봉 25일 만에 누적 관객 수 8만명을 돌파하며 예술영화로선 큰 성과를 내고 있다. 다큐 속 부모님은 1920년대생인 의대 교수들로, 환각·환청 증세를 보이는 누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약 25년간 집에서 돌봤다. 누나는 2008년이 돼서야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의 한 장면. 맨 왼쪽이 주인공인 마사코다. 사진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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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발견과 개입이 중요한 질환”
현장의 관객들은 2026년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현병은 조기 발견과 개입이 중요한 질환으로 꼽힌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치료받지 않은 기간이 짧을수록 예후가 좋은 대표적 질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약물과 상담 등 조기 개입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한국에도 여전히 많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국가정신건강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4년 조현병 등 망상장애로 의료기관을 찾은 외래·입원 환자는 약 23만명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조현병 발병 후 의료기관을 찾는 등 치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6주(2019년 기준)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한 기준인 12주의 약 5배에 달한다.
다큐를 본 관람객이 자신의 감상을 적어 붙인 모습. "그래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어 먹먹하다"고 적었다. 최혜리 기자
조기 개입의 의미를 ‘약물 투여’ ‘병원 입원’이라는 소극적인 방식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이날 상영 후 만난 노모씨(30대·남)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병원이나 시설 등을 성급히 찾기보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시간을 가지며 천천히 대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조현병을 겪는 환자들의 모습과 상황은 너무나도 다양한데, 지금은 선택지가 너무 획일적”이라고 말했다. 조현병이 있는 노씨는 현재 ‘동료지원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동료지원은 정신질환·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이 다른 정신질환·정신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 복귀를 돕는 개입의 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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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지원인’ 지원방식 법제화…“지역사회 차원 지원 필요”
하지만 조현병 발병기가 온 사람이나 가족이 의료기관 외의 선택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지역사회에서 오랜 시간 적극 개입을 하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료지원인을 통한 지원방식은 민간 차원에 머물다 지난 2024년 1월에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제도화됐다. 서울시에 있는 동료지원 센터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포함해 아직 세 곳뿐이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동료지원인은 88명, 동료지원 쉼터는 7개소가 운영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다큐에서처럼 돌봄을 모두 떠안거나, 정보가 부족해 알음알음 대응하기 바쁘다. 2024년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자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질환자 가족의 61.7%가 돌봄 부담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17세 때 조현병이 발병한 아들을 둔 아버지이자,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이재성씨는 이날 GV(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어떻게 해야 했을까’란 질문을 환자나 가족에게만 던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정신질환자에 있어서도 지역사회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 역시 “한국의 정신건강정책은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며 지역사회 회복을 목표로 전환했으나, 아직도 가족들 부담이 크다. 조현병 논의에 있어 ‘어떻게 해야 했을까’란 질문은 환자뿐 아니라 가족, 지역사회, 국가가 함께 답해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