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나 손을 맞잡은 모습. 사진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북·미 대화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공인되지는 않되 핵 보유를 용인받고 제재 완화까지 얻어낸 이른바 ‘인도·파키스탄 모델’의 문턱에 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빗장이 풀린 건 미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다. 클린턴 정부 때인 1998년 5월 두 나라가 잇따라 핵실험을 하자 미국은 경제·군사 지원을 제한하는 제재를 부과했다. 하지만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당시 부시 대통령은 핵실험 관련 잔여 제재를 면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2002년 연감은 당시 인도와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탄두를 각각 최대 35기와 48기로 추정했다. 수십 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제재의 상당 부분이 풀린 셈이다.
파키스탄은 9·11 이후 대테러전 협력이 제재 해제의 명분이었다. 인도는 아예 2008년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의 예외를 인정받아 핵확산금지조약(NPT) 비가입국인데도 국제 민수 핵거래까지 가능해졌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전략적 파트너로 끌어들이려는 미국의 계산이 작용했다.
2017년 7월 13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후임자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지난 텍사스주 부시센터에서 열린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다만, 북한에 적용된 제재 구조는 인도·파키스탄보다 복잡하다. 국내법에 근거해 대통령이 면제할 수 있었던 두 나라 제재와 달리, 북한에는 2006년 이후 광범위한 경제·금융 제한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겹쳐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P5(미·러·중·영·프 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NPT상 핵보유국)에 낄 수는 없겠지만 파키스탄 정도의 지위에는 근접했다”며 “제재란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이 많아 북·미가 꺼낼 카드도 적잖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동 전쟁은 북한이 핵보유 노선을 고수할 유인을 키웠다. 핵무장을 완성 못한 이란은 미국의 공습을 받았지만, 핵전력을 갖춘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상대가 됐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가 “이중잣대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19일 워싱턴포스트)고 지적한 것도 북한은 이란과 달리 군사력으로 핵능력을 제거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사진. 미군의 공습으로 이란 목표물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담겼다. 트루스소셜 캡처
다만 북한이 인도·파키스탄의 전철을 밟는 게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북핵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겨냥하고 있어서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면 한국과 일본에서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는 “인도·파키스탄 때는 중국 견제와 대테러전이라는 전략적 가치가 있었지만, 북핵 용인으로 얻을 수 있는 건 트럼프 개인의 ‘빅 에고’ 충족 외엔 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