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창훈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환자 신창복씨 4주마다 소마툴린 약물치료 이어가 부작용 적어 일상생활 유지하며 치료 의료진·환자 간 신뢰와 소통이 중요
소마툴린 치로 100회를 넘긴 신창복씨(왼쪽 사진)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와 그간의 소회를 나누고 있다.
같은 일을 100번 반복하는 건 쉽지 않다. 익숙해질수록 지치고, 때로는 멈추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특히 몸과 마음의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항암치료라면 100번의 무게는 더욱 무겁다.
그런 암 치료를 100번 넘게 이어온 두 사람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와 신경내분비종양을 앓고 있는 70대 여성 환자 신창복씨다. 낯선 희귀암으로 만난 두 사람은 10년 넘게 호흡을 맞추며 치료를 이어왔다. 그렇게 쌓아온 100번의 치료는 신씨의 일상을 지켰고, 지금은 같은 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치료로 일상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을 만나 신경내분비종양의 치료 전략과 일상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Q : 신경내분비종양, 어떤 질환인가.
A :
유창훈 교수(이하 유 교수)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계 세포에 생기는 종양으로, 전신의 다양한 장기에 생길 수 있다. ▶다른 암보다 비교적 천천히 자라고 ▶호르몬 관련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종양의 등급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 대부분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종양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복부 통증이나 호르몬 과다 분비로 인한 얼굴 홍조·설사 등을 계기로 진단되기도 한다.”
Q : 어떤 계기로 병을 발견하게 됐나.
A :
신창복 환우(이하 신씨) “2008년 건강검진에서 간에 이상이 발견됐다. 병명을 알아내는 데만 한 달이 걸렸고, 이후 간의 상당 부분을 절제했다. 4년 반 만에 재발해 다시 수술을 받은 후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 교수님을 만났다. 그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진 소마툴린(성분명 란레오타이드) 치료의 시작이었다.”
신씨가 진단받을 당시에는 신경내분비종양의 진단 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았다. 분류법이 마련된 것은 2010년으로, 이전에는 암과 유사하다는 뜻의 ‘유암종(類癌腫)’으로 불리며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질환으로 여겨졌다. 유 교수는 “2010년대 이후 신경내분비종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그 무렵 신씨를 만났다”고 설명했다.
Q : 신씨가 받은 소마툴린 치료는 어떤 치료인가.
A :
유 교수 “신경내분비종양 치료는 수술적 치료와 비수술적 치료로 나뉜다. 수술이 가능한 초기라면 수술을 하고, 전신에 전이됐거나 수술이 어려운 경우에는 약물치료와 같은 비수술적 치료를 고려한다. 약물치료는 다시 표적항암제와 호르몬 관련 치료로 나뉘는데, 호르몬 관련 치료의 대표적인 약제가 바로 소마툴린 같은 소마토스타틴 유사체다. 원래는 증상 조절을 위해 사용됐지만, 항암 효과가 확인되며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 부작용 위험이 낮아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이고,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우선으로 사용한다.”
소마토스타틴 유사체가 표준치료로 자리 잡으면서 질환을 장기 관리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신씨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4주마다 소마툴린 치료를 이어오며 최근 100회를 넘겼다.
소마툴린 치로 100회를 넘긴 신창복씨(왼쪽 사진)가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유창훈 교수와 그간의 소회를 나누고 있다.
Q : 100회를 넘긴 소감이 궁금하다.
A :
유 교수 “진행성 4기로 진단받은 환자들은 ‘얼마나 살 수 있느냐’를 많이 묻는다. 이때 의료진이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로 10년 넘게 치료를 이어온 환자의 사례를 전달하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신씨의 사례는 다른 환자들에게 희망과 치료를 이어갈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신씨는 치료법이 확립되던 시기부터 시작해 좋은 경과를 이어왔다. 신경내분비종양 치료가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A :
신씨 “신경내분비종양 치료는 내게 일상이었다. 미국에 사는 딸을 보러 가도 다음 치료 전날이면 꼭 돌아왔고, 일정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100회를 넘겼다. ‘치료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그저 감사하다. 치료하며 부작용도 크지 않았고, 오히려 치료를 계기로 운동도 시작하며 건강을 더 챙기게 됐다”
Q : 긴 치료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A :
신씨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건 병원에 올 때마다 함께해준 남편이었다. 오랜 시간 치료를 함께 하며 쌓인 교수님에 대한 믿음도 컸다. 교수님의 한결같은 표정을 보면 안심이 됐고, 그 힘으로 다음 진료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A :
유 교수 “신경내분비종양은 치료를 길게 이어가야 하는 질환으로, 의료진과 환자의 호흡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싶은지, 임신 계획이 있는지 등 환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면 그에 맞춰 치료를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치료 초반에는 환자를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면 치료 상담을 위해 3개월에 한 번 만나 ‘괜찮으시죠?’라는 한마디로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씨는 의료진을 믿고 치료를 이어가면서 원하는 바도 충분히 전했다. 이러한 믿음과 소통이 치료를 이어오는 힘이 됐다.”
Q : 환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점은.
A :
유 교수 “신경내분비종양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10~20년도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다. 다만 진단을 받으면 불안한 마음에 빨리 치료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치료를 시작하기보다 제대로 진단·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조급해하기보다는 의료진을 믿고, 충분한 시간 소통하며 치료 방향을 정해야 한다.”
A :
신씨 “신경내분비종양 치료는 오솔길을 걷는 것과 같다.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땐 좁고 어두운 길을 가는 기분이다. 그러다 교수님께 ‘변함없다’는 말을 들으면 그 한마디를 위해 3개월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양이 커졌다는 결과를 마주할 때도 있다. 그럴 땐 오솔길에서 바위를 만난 것처럼 조금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2008년부터 이 길을 걸어왔다. 의료진에 대한 믿음과 가족의 지지가 있으면 충분히 걸어갈 만한 길이다. 다른 환자분들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