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경기가 매우 나쁘다. 특히 골프 패션 업종은 혹한기다. 그런데 프리미엄 클래식 골프화 브랜드 ‘람다(LAMBDA)’는 이 와중에 입점이 까다롭다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확장 리뉴얼을 했다. KLPGA 투어 프로 출신 박주희(41) 씨가 그 주역이라고 한다.
박주희는 먼저 골프를 시작한 언니를 따라 클럽을 잡았다. 대한골프협회 주최 제주도지사배 등에서 우승했다. 국가대표 상비군을 거쳤고, 박현경의 부친인 박세수 프로 등에게 지도를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열여덟 살에 KLPGA 투어 정규 투어 시드를 땄으나 국내 투어 대신 미국 2부 투어인 퓨처스 투어(현 엡손 투어) 문을 두드렸다. 낯선 땅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았고 국내 투어로 복귀해서도 그랬다.
2005년 상금 랭킹 46위가 최고 시즌이었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는 클럽을 내려놓았다. 박주희는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했다. 서울 반포 파스텔 연습장에서 레슨을 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수입도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신세계 람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박주희.
박주희는 어릴 때부터 예쁜 옷과 신발을 좋아했고, 그래서 패션감각이 좋았다. 패션에 투자도 많이 했다. 선수 시절 선배들이 “상금 타서 명품 사는 데 다 쓴다”는 핀잔도 했다고 한다.
골프화는 바닥이 딱딱한 클래식 구두형을 좋아했다. 평발 비슷해서 발바닥이 늘 아팠지만 “예쁜 걸 신으려면 참아야 한다”며 버텼다. 쇠 징을 박은 묵직한 클래식 골프화를 신고 저벅저벅 걸을 때의 단단한 느낌이 마냥 좋았다.
레슨을 하면서는 클래식 구두형 골프화 ‘람다’를 신었다. 이 신발이 좋아 홍보대사 비슷한 ‘람다 크라운 멤버’를 뽑을 때 지원했다. 당시 투어프로가 아니라 레슨 프로인데도 합격했다. 박주희는 “연습장에서 내가 신은 걸 보고 손님들이 물어 물어 사더라. 그래서 람다 제휴 프로 중 내가 매출 1등을 했다. 그러면서 프로 관리를 하고 디자인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람다에서 6년 전 그를 정식 영입했다. 그는 전국 백화점 팝업 매장을 몇 달씩 지키며 신발을 팔았다. 60만~100만 원대에 달하는 고가라 전문지식이 없으면 그 가치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골프화를 잘 아는 박주희 덕에 람다는 신세계 직영 편집숍을 휩쓸었고, 골프 패션이 ‘혹한기’를 겪는 와중에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확장 리뉴얼을 하기에 이르렀다.
신세계 람다 매장에서 포즈를 취한 박주희.
박주희는 이전엔 매장에서 프로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손님을 응대하려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신발끈을 매어주어야 하는데 그가 ‘투어 프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순식간에 눈빛을 바꾸며 깍듯하게 돌변하곤 해서다.
사람 자체가 아니라 외적인 ‘타이틀’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세태가 보기 좋지 않았을테고, 돌변한 친절이 오히려 모멸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초창기 프로골퍼의 역사를 다룬 책 『토미스 아너(Tommy's Honour)』에는 전설적인 골퍼 올드 톰 모리스와 영 톰 모리스 부자의 일화가 나온다. 당시 프로골퍼는 캐디 일도 했다. 나무 티(Tee)가 없던 시절, 올드 톰은 회원들의 플레이를 돕기 위해 무릎을 꿇고 흙을 모아 정성스레 티를 만들어줬다. 볼에 침을 바르고 모래를 살짝 묻혀 스핀이 잘 걸리게 돕기도 했다.
아들 영 톰은 그걸 참지 못했다. “왜 저 사람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느냐”고 했다. 아버지는 “골퍼의 스윙 특성에 맞게 모래 티를 만들어주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다. 무릎을 꿇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주희도 올드 톰처럼, 골퍼의 발을 어루만지고 그에게 가장 완벽한 신발을 신겨주는 일 역시 하나의 ‘예술’이자 프로페셔널의 영역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구부리는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단지 무릎일 뿐이었다. “골프와 골프화의 프로”라고, 그는 당당히 말한다.
그는 “발 모양만 봐도 대략적인 사이즈와 발의 특징이 보인다. 치수에 맞는 신발을 파는 게 아니라 발볼, 발등 높이, 발 모양은 물론 고객의 평소 골프 스타일과 플레이 특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품을 권해드린다. 단순한 신발 매장이 아니라 골프와 플레이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는 은퇴 후 진로를 고민하는 수많은 후배 골퍼들에게도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미국 골프장에 가보면 프로들이 클럽하우스 프로숍을 직접 운영하며 고객에게 장비를 설명하고 추천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레슨 외에는 진로가 너무 한정적이다. 풍부한 필드 경험과 전문성은 유통과 세일즈 현장에서도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선수로서 정규 투어 우승 트로피는 들어 올리지 못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진짜 최고가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도 또 다른 멋진 길이 있다는 것을 꼭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