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차세대 비만 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에 최대 3조2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단일 후보물질 기준으로 국내 제약업계 역대 최대 규모다.
24일 한미약품은 제넨텍과 비만·제2형 당뇨병·심혈관질환 등 대사질환 치료 후보물질 ‘HM17321’의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제넨텍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7321의 개발·제조·상업화 권리를 보유한다.
계약 규모는 총 23억500만 달러(약 3조2000억원)다. 선급금 1억9000만 달러(약 2600억원)와 임상 개발·허가·상업화에 따른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 최대 21억1500만 달러(약 2조9000억원)가 포함됐다.
선급금이 전체 계약 규모의 8.2%로, 통상 기술수출 계약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제품 출시 후에는 매출에 따른 로열티를 별도로 받는다.
이번 계약은 단일 후보물질 기준 한미약품은 물론, 국내 제약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앞서 한미약품이 2015년 사노피와 체결한 약 4조8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은 당뇨 신약 후보물질 3개를 한데 묶은 패키지 계약이었다.
HM17321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과 다른 경로로 작용하는 비인크레틴 계열 우로코르틴2(UCN2) 유사체다. UCN2가 작용하는 CRF2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자극해 체지방을 낮추면서 근육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GLP-1 계열 비만약은 높은 체중 감량 효과에도 치료 과정에서 제지방량(체중에서 지방을 제외한 무게)이 함께 감소한다는 한계가 지적됐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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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손실 줄이고 체지방 뺀다”
회사에 따르면 비임상 연구에서 HM17321을 단독 투여하거나 GLP-1 치료제와 함께 투여했을 때 모두 체중 감량과 체성분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펩타이드 기반 치료제인 만큼 향후 GLP-1 계열 비만약과 하나의 복합제로 만들거나 함께 투여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비만약 개발 경쟁이 단순히 ‘얼마나 많이 빼느냐’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빼느냐’로 옮겨가는 가운데 제넨텍도 이 가능성에 주목했다. 로슈 측은 “한미약품으로부터 HM17321을 도입함에 따라 지방량을 선택적으로 감소시키는 동시에 근육량과 근기능을 개선하는 차별화된 치료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M17321은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1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아 현재 건강한 성인과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안전성 등을 평가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임상 1상을 마무리한 뒤 임상 2상부터 제넨텍이 개발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신약 개발에는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만큼 기술수출은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주요 통로로 꼽힌다. 대형 기술수출이 쌓일수록 국내 신약 기술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미약품의 기술수출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신약 개발 역량과 기술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한 기업의 성과를 넘어 업계의 연구개발과 글로벌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