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미국 애플 주식을 사들인 직장인 박모(38)씨는 최근 원화 강세 때문에 고민이다. 달러화 기준으로는 3% 정도의 수익을 냈지만, 원화로 환산한 수익률은 -3%로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주범은 최근 한두 달 사이 급락한 원-달러 환율이었다.
원-달러 환율의 하락세(원화 강세)가 해외 주식 투자 시장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미국 주식과 금·채권 등 주요 기초자산 가격이 올랐음에도 원화 환산 시 발생하는 환차손이 수익률을 깎아내리면서다.
24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 대비 4.1원 내린 138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약 11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이날 장중 한때 1376.50원까지 밀리기도 했다. 지난 7월1일 장중 1559.2원까지 오른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 반 사이 170원 이상 급락했다.
김경진 기자
환율이 1500원을 넘나들던 고환율 시기에 달러 자산에 진입한 투자자일수록 최근 주가 상승분의 상당액을 환차손으로 반납하는 형국이다.
코스콤 ETF CHECK에 따르면 ‘TIGER 미국S&P500’의 최근 한 달 수익률은 2.47%에 그쳤다. 반면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환헤지형은 같은 기간 3.23% 올랐다. 'TIGER 미국테크 TOP100'도 한 달간 2.06% 내렸지만, 환헤지형은 3.58% 올랐다. 기초자산은 동일하지만 환율 변동에 따라 수익률 격차가 벌어진 셈이다.
금 투자에서도 ‘ACE KRX금현물’이 10.41% 오르는 사이 환헤지형인 KODEX 골드선물(H)은 14.78% 상승해 더 높은 성과를 냈다. 미국 장기채에 투자하는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 역시 -6.57%를 기록한 반면 환헤지형은 -0.76%로 선방했다.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1350원 선까지 하락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 확대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 진정세, 이달 말 법인세 중간예납 및 주주환원 확대를 앞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의 달러 환전 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일부 조선사와 연기금 중심의 선물환 매도 물량도 원화 강세 압력을 키우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 들어 달러 공급 우위 환경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공급 우위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다만 한미 무역 합의에 따라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총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가 집행되는 과정에서 달러 유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환율 급락을 기회로 삼은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재진입 수요와 미 연준(Fed)의 긴축 기조 재부각 가능성 등도 환율 하단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장기 투자 관점에서는 환헤지를 하지 않는 환노출형이 유리하다"(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자산 배분과 위험 분산 측면에서 유리해서다. 김승현 하나자산운용 1Q ETF솔루션본부장은 "통상 글로벌 금융위기나 증시 급락 국면에서는 대표 안전자산인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주가 하락에 따른 원화 환산 손실을 방어해 주는 완충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