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 에튀드를 치면서 각 곡에 맞는 하이쿠(일본의 정형시)를 붙였다. 그걸 다시 읽어보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거기서 벗어나 자유롭게, 그날 상황과 그날의 영감에 따라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김세현(18)이 24일 서울 종로구 크레디아클래식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첫 앨범을 준비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해 롱티보 국제콩쿠르 우승으로 유럽 음악계의 신예로 떠오른 김세현은 다음 달 4일 쇼팽과 포레의 작품들을 담은 데뷔 앨범 발매, 6일 독주회를 앞두고 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김세현은 다소 느린 말투로,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만의 답을 이어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중 적확한 단어를 골라내는, 나이 답지 않은 신중함이 느껴졌다.
Q : 첫 앨범이다.
A : 누구나 피아노 공부할 때 음반 내는걸 꿈 꿀 것이다. 나 역시 그랬는데, 지금 내 나이에 현실이 될 것이라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지금 이런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Q : 왜 쇼팽과 포레였나.
A : 그간 쇼팽의 곡들을 많이 다뤄왔기 때문에 우선은 쇼팽을 앨범 중심에 두기로 했다. 그와 어떤 작곡가를 페어링하면 좋을지 고민했을 때 콩쿠르 때 쳤던 포레의 작품이 떠올랐다. 포레 초기 작품은 쇼팽 영향을 많이 받았다.
Q : 롱티보 콩쿠르 때도 쇼팽 에튀드를 연주했다.
A : 이젠 콩쿠르 때만큼 빠르게 연주할 필요는 없다. 템포가 좀 더 자유로워도 되고 여유를 가져도 된다. 에튀드의 예술적 가치에 집중해서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했다.
Q : 연주에 영감을 준 작품은.
A : 오히려 그 반대다. 에튀드를 치면서 각 곡에서 떠오르는 하이쿠를 썼다.
Q : 앨범 설명도 직접 썼다.
A : 아인슈타인의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도 인용했다. 레슨 때 듣고 깊은 인상을 받은 말이다. 나는 뭔가를 항상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그 말이 관객이나 연주자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명확한 문구인 것 같았다. 어떤 예술가든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로움 인 것 같다.
피아니스트 김세현. [사진 크레디아]
쇼팽과 포레 모두 프랑스 피아니즘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작곡가들이다. 쇼팽은 폴란드 출생의 작곡가지만 조국의 상황이 열악해지며 대부분의 활동을 프랑스에서 했다. 프랑스 대중음악의 한 장르인 샹송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곡도 삽입됐다. 앨범 전체에서 느껴지는 프랑스에 대한 애정에 대해 김세현은 “내게 각별한 도시”라고 답했다.
Q : 왜….
A : 프랑스 파리는 2023년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를 우승하고 첫 유럽 연주를 하며 찾은 곳이다. 그때 서점에서 호텔로 가며 세느강을 건너가야 했는데 야경이 참 멋졌다. 물에 비친 도시의 모습이 다음 날 연주할 때도 영감이 됐다. 롱티보 콩쿠르가 열린 곳도 파리다.
Q : 음반에는 샹송 ‘4월의 파리’ 피아노 버전도 포함됐다.
A : 지난해 7월 에펠탑 앞 무대에서 열린 프랑스 혁명기념일 음악회에서 연주한 곡이다. 처음 당 타이손 선생님(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께 이 곡을 연주한다고 했을 때 이런 곡은 프랑스에서의 문화, 삶, 모든 걸 흡수하고 살아봐야만 알 수 있는 곡이라고 우려를 표하셨다. 그럼에도 제가 이 곡을 너무 좋아해서 레슨 때 들고 갔다. 선생님이 첫 연주를 듣고선 놀라시며 “아무 데서나 쳐도 되겠다”고 해주셨다.
지난해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면서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백혜선과 당 타이손을 사사하는 동시에 하버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5월엔 유럽전승기념일 80주년 평화음악회에 초청돼 파리 개선문 앞에서 쇼팽을 연주했다. 국내에서는 KBS교향악단, 원코리아오케스트라 협연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나에게만 하루에 48시간이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 관리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김세현이 24일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사진 크레디아]
Q : 연주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A : 우선순위는 당연히 피아노다. 남는 시간엔 무조건 연습한다. 숙제는 보통 밤 10시부터 시작한다.
Q : 영감을 많이 주는 피아니스트는.
A : 쇼팽 연주는 루빈슈타인, 알프레도 코르토 연주를 자주 들었다. 루빈슈타인은 보수적인 폴란드 스타일로, 알프레도 코르토는 프랑스 스타일로 연주한다. 그 두 가지 접근법에 중간에 있는 게 당 타이손 선생님이다.
마지막 질문은 “어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냐”는 물음이었다. 김세현은 이렇게 답했다. “계속해서 음악을 섬기는 마음으로 공부를 해나가겠다.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가 보이는 연주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