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육훈련 100만 명’, ‘메가프로젝트를 위한 재생에너지 100GW 달성’. 왜 정책은 늘 딱 떨어지는 숫자일까. ‘98만 3700명’ 같은 목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정책에는 때론 상징도 필요하고, 실제로 100만이 맞는 규모일 수도 있다. 문제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이른 가정과 근거를 검증할 방법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학에서 10.0㎝는 10㎝와 같지 않다. 어디까지 측정했고 얼마나 불확실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곧 과학적 측정의 정직함이다. 실험실에서 ‘아는 것보다 정밀한 척하지 말라’는 훈련을 받는 이유다. 과학의 ‘100만’은 오차를 인정하는 겸허한 고백이다. 정책의 ‘100만’이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상징에 머물지 않으려면 추론의 논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이 아니라 ‘작명’이 된다.
김지윤 기자
1945년 미국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 진행됐다.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제한된 정보로 폭발 규모를 추정하고 있었다. 폭발 지점에서 10마일 떨어진 곳에서 종잇조각을 떨어뜨려 폭풍파에 밀려난 약 2.5m를 재고 그 위력을 계산했다. 실제와 차이는 있었지만, 이 일화가 기억되는 이유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덕분에 계산을 검증하고 더 나은 예측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불완전한 데이터 속에서도 과학적 추론으로 예측하는 것, 이를 페르미 추정이라 한다.
불확실성이 커져가는 시대, 합리적 정책의 조건은 처음부터 단일한 정답을 맞히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98만3700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 역시 ‘근거 없는 정밀함’일 수 있다. 보고 싶은 것은 숫자 곁의 설명이다. 어떻게 계산했는지, 얼마나 오차가 날 수 있는지, 다양한 예측 시나리오는 무엇인지. 따져볼 수 있고, 방향이 틀렸을 때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것, 그것이 좋은 정책의 첫 번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