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일 야당 반발 속에 국회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패스트트랙이라 불리는 신속처리안건의 심사 기간을 기존 최장 330일(약 11개월)에서 90일(약 3개월)로 대폭 줄이는 게 골자다. 소관 상임위 심사는 최장 180일→60일로, 법사위 심사는 90일→30일로 줄이고, 본회의 부의 후 60일 이내 상정이라는 대기시간은 아예 없앴다.
민주당이 내세운 논리는 ‘일하는 국회’다. 이름은 패스트트랙이지만 법안 처리까지 거의 1년이 걸려 오히려 ‘슬로트랙’이 됐다는 주장이다.
민주, 패스트트랙 심사기간 단축
국회선진화법 ‘균형’ 취지 어긋나
속도보다 합의와 숙의가 더 중요
일리가 아주 없는 말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0년 ‘20대 국회 입법활동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가결 법안의 평균 처리 기간은 146.3일이었다. 일반 법안의 경우 약 5개월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데, 패스트트랙에 태우면 기한이 1년 가까이로 늘어나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첨단 신기술이 우리 사회를 빛의 속도로 바꾸는 시대에 기민한 입법 대응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의 탄생 배경을 진지하게 돌아봤으면 한다. 패스트트랙을 포함해 2012년 여야가 어렵게 합의해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의 핵심 취지는 다수당의 머릿수, 소수당의 물리력 등 힘에 의존하는 정치를 막자는 것이었다. 다수당 출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소수당이 법안 심사를 무한정 붙잡아둘 수 없도록 330일이라는 숙성 기한을 둔 것이 패스트트랙이다.
소수당을 위해서는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절차인 필리버스터(회기 내 무제한 토론)를 부활시켰다. 민주당이 야당이던 2016년 2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추진하던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38명의 야당 의원이 총 192시간25분 동안 본회의장 발언을 이어가며 브레이크를 건 것은 필리버스터의 위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를 양대 축으로 한 국회선진화법은 다수의 독주와 소수의 억지를 동시에 묶고 대화와 타협의 시간을 갖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절충과 균형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패스트트랙도 모자라 필리버스터도 손볼 태세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 발의 요건을 완화하고, 필리버스터 도중 재석 의원이 의사정족수에 못 미치면 국회의장이 회의를 중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은 “식물국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회가 속도와 효율성만 따지는 공장은 아니다. 좋은 법을 만드는 데는 숙의의 시간이 필요하다. 법안 발의, 상임위 심사, 각계 의견 수렴, 법안 수정,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본회의 찬반 토론 등 겹겹의 여과 절차를 둔 이유다.
특히 정권 향배에 따라 룰이 왜곡될 수 있는 선거제도나 국민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법제도 등 중요 법안이라면 숙의 기간은 더욱 충분할 필요가 있다. 패스트트랙 기간을 일률적으로 90일로 정한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시급한 민생 법안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중요 법안의 패스트트랙 기간을 차등화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민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패스트트랙 심사 기간을 크게 줄이고 나아가 필리버스터 무력화까지 관철한다면, 국회선진화법이 공들여 만든 균형은 한쪽으로 확 기울게 된다.
야당의 입법 지연도 무조건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에서 야당에 주어진 권한이자 책무는 ‘거부권’이라기보다 ‘견제권’이다. 법안에 맹목적으로 반대하며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 허점을 파고들고 대안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지금 여야에 필요한 것은 절제다. 민주당은 다수의 힘을 오용하지 않고 국민의힘은 소수의 몽니를 남용하지 않는 것이다. 패스트트랙과 필리버스터에는 죄가 없다. 국회선진화법의 기본 정신인 견제와 균형을 망각한 채 제도를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하고 대안 없이 반대하는 당리당략의 정치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