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ㆍ미 대화가 성사되면 북핵 담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고, 북한에 제공할 경제적 대가는 한국이 상당 부분 떠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집권 1기 때부터 북한 지원 비용은 주변국이 부담해야 한다 인식을 보여왔다. 또, 한국이 북ㆍ미 협상에 참여하기 위한 일종의 ‘입장료’로 대북 지원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의 첫 북ㆍ미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미국이 한국에 “수조 달러를 썼다”고 강조한 뒤 “한국ㆍ중국ㆍ일본은 북한을 돕는 데 매우 큰돈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6월 김영철 당시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에는 북한 경제지원에 대해 “한국이 할 것”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비핵화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는 질문에 “한국과 일본이 북한을 크게 도울 것”이라며 “우리가 도울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는 북한 경제지원 주체로 한ㆍ중ㆍ일을 거론한 뒤 한ㆍ미 연합훈련 비용 문제를 언급하며 “할 때마다 한 번에 1억 달러가 든다. 한국이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동맹국에 더 많은 몫을 요구하는 트럼프 특유의 거래주의는 2기 들어 더 강해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증액을 강하게 압박했다. 지난 16일 한ㆍ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면서 미국이 부담하는 훈련 비용을 문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6월 30일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당시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북ㆍ미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려는 트럼프의 태도와 맞물려 더 많은 대북 지원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2019년 6월 판문점 회동에서 문 전 대통령은 트럼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현장에서 만났지만 이어진 북ㆍ미 단독회담에는 배석하지 못했다.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듬해 출간한 회고록에서 “트럼프는 문재인이 근처에 오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향후 한국이 북ㆍ미 협상판에 자리를 확보하려면 더 많은 입장료를 내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ㆍ미가 합의하고 한국이 ‘계산서’를 떠안은 전례도 있다. 1994년 북ㆍ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른 46억 달러 규모의 경수로 사업에서 한국은 전체 비용의 70%인 32억 달러를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업은 중도 좌초했고, 한국이 이미 투입한 약 11억 달러는 손실로 남았다.
전직 고위 외교당국자는 “한국이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한다고 해서 트럼프가 그냥 협상판에 끼워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북 경제 지원을 비롯한 실질적인 비용 부담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