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단독] 법원 “LH 철거민 임대료 할증 근거 없어”…줄소송 가능성

중앙일보

2026.08.24 13:00 2026.08.24 13:20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인천 한 국민임대주택에 입주한 철거민들에게 재계약 때마다 규정을 잘못 적용해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려받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이렇게 할증된 보증금과 임대료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LH에 반환을 명령했는데, 인천뿐 아니라 전국 철거민들에게도 비슷한 규정이 적용됐을 수 있어 줄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남 진주 LH 본사. 뉴스1

경남 진주 LH 본사. 뉴스1


인천지법 민사4단독(이우철 부장판사)은 인천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철거민 32명이 LH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지난 13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LH가 철거민에게 적용 근거 없이 올려받은 보증금과 임대료를 승소한 10명에게 각각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이 임대아파트에는 인천 서해구 가정동 도시개발사업으로 보금자리를 잃은 철거민 다수가 2012년부터 순차적으로 입주해 살고 있다. 이들은 2년마다 재계약하며 최장 30년을 이곳에서 거주할 수 있다.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에 따라 철거민 우선 공급 가구는 다른 국민임대주택과 달리 입주 시 소득 요건을 따지지 않는다.

국민임대주택은 물가 상승과 주변 시세를 고려해 재계약 때마다 보증금과 임대료를 최대 5%까지 기본 인상할 수 있다. 또 입주 당시 기준이었던 소득·자산 요건을 초과하면, 재계약 시점에 초과 정도에 따라 보증금과 임대료를 추가로 할증한다.

그런데 LH는 철거민 가구 재계약 시 기본 인상뿐만 아니라 소득 초과 할증 규정을 그대로 적용해 보증금과 임대료를 올려받았다. 입주 시 소득·자산 요건 심사가 면제되는 철거민 가구에 적용할 임대료 할증 규정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일반 국민임대주택과 같은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이에 이 아파트 주민 A씨는 2022년 “철거민 소득 관련 할증 규정이 없는데도 부당하게 임대료와 보증금을 증액했다”는 취지로 국민권익위에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A씨의 민원을 받아들여 LH에 시정을 권고했다. A씨는 권익위 판단을 근거로 LH에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이 1심 판결에 대해 LH는 항소를 포기하고, A씨에게 증액한 임대료 등 973만원을 이자와 함께 지급했다.

이 소식을 접한 다른 입주민 32명은 할증된 임대료와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철거민 유형으로 입주했음에도 소득 및 자산요건 초과에 따라 할증된 차임 등은 부당이득”이라고 판단하고, 승소한 10명에게 각각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1436만원을 지연 이자와 함께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할증 규정의 문언, 관계 법령의 입법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하면 피고(LH)가 할증 근거로 제시한 규정은 소득 및 자산요건 적용대상인 임차인이 소득요건 등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 경우에 적용되는 규정”이라며 “재계약 시 소득 및 자산요건을 적용하지 않는 철거민 유형의 입주자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다만 나머지 22명은 소득·자산초과를 이유로 한 할증이 없다고 보고 청구를 기각했다.

LH 측은 “관련 법령이 입주자격·재계약요건 판단 시 소득요건을 제외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해서 재계약 시 소득요건 초과를 이유로 한 할증까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맞섰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LH는 또 “부당이득반환청구권에는 상법 제64조의 5년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민법에 따른 10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했다.



전국에 유사 사례 가능성

더 큰 문제는 LH가 전국 다른 철거민 가구에도 같은 방식으로 할증을 적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1심 판결이 확정되고 전국 단위 소송으로 번진다면 LH가 반환해야 할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철거민 측 법률대리인은 “LH가 적법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관행적으로 처리하다 보니 이런 오류가 생긴 것”이라며 “같은 규정을 적용받은 철거민이라면 지역에 상관없이 소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LH의 대응도 논란거리다. 철거민에게도 소득·자산 개선에 따라 임대료를 할증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면 관련 제도부터 정비했어야 하지만, 소송전이 벌어지고도 개선은 검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A씨가 낸 최초 소송의 승소 판결에는 항소를 포기했다.

이와 관련해 LH 관계자는 “구체적인 판결 사유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며 “공사의 핵심 주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 대리인과 상의해 항소 등 후속 법적 절차 진행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청구가 기각된 나머지 입주민은 지난 21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변민철([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