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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이야기] 산골에서 더 산골로

Los Angeles

2026.08.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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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언론인

김용현 언론인

방송국에서 같이 지냈던 후배들이 연이어 텃밭을 방문했었다. 그중 한 후배가 함께 산길을 오르면서 하는 말이 “선배님은 매일 같이 소풍 다니시는 기분이시겠어요” 한다.  
 
소풍이라, 텃밭에 올라가는 5마일의 산길에서 하늘을 덮은 숲을 지나고 숲속의 외딴집도 만나고 자동차 한 대씩 지나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다보면 김밥과 삶은 계란, 사이다만 들지 않았을 뿐 학생 때 정릉이나 동구릉으로 소풍 가던 일이 기억 날 법도 했다.
 
거기에다 텃밭에 도착하면 고추, 가지, 오이, 토마토가 풍성하게 열려 있어 수건돌리기나 보물찾기를 할 필요 없이 얼마든지 신선한 작물들을 따 갈 수 있으니 소풍치고는 실속 있는 소풍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올해 텃밭 농사는 그런대로 풍작이다. 밭에서 따다 아내가 만들어 주는 고추 절임, 오이 김치, 가지나물 무침, 무생채가 여름 반찬으로 익숙해졌고 산등성이라 좀 멀어서 그렇지 친구들이나 딸네 이웃들도 다녀갈 때의 행복한 뒷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폭염이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소나기를 자주 뿌려주었고 산 위에서 시원한 바람도 끊이지 않아 작물 성장에는 좋은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른 봄에 객토를 조금 해 주었고 딸의 권유로 밭을 바꾸어 채소를 심는 윤작(輪作)을 해본 것이 양분 섭취와 해충 방지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15개의 상자형 텃밭 중 3개를 차지한 화단에서는 탐스러운 글라디올러스에 이어 백일홍, 에키네시아 등이 한창이더니 어느새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봉우리를 내밀고 있다.
 
아름답게 보자면 이 세상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라고 할 만큼 달관하지는 못했어도 이 세상을 소풍 길로 생각하면 잠시 잠깐도 근심하며 살 까닭이 없다.  
 
지난번 ‘별일’에 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는데 내게 또 하나의 ‘별일’이 일어났다. 감사하게도 뉴저지에 와서 그렇게 기다리던 아파트에서 연락이 왔다.
 
리지 오크 시니어 하우징(Ridge Oak Senior Housing)이라고, 뉴저지에서 비교적 부촌인 배스킹리지의 6개 지역교회가 비영리법인을 설립해 저렴한 가격으로 이 지역 은퇴자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만든 아파트다. 호수와 공원에 둘러싸여 있는 26에이커 숲속에 전원주택형의 단층 하우스로 조성된 캠퍼스가 너무나 아담하고 평화롭게 보여 2년 전에 서둘러 신청했었는데 이번에 입주하게 된 것이다. 소풍보다는 짐이 더 많았으니 여행이라고 할까, 이달 초 그 여행을 마쳤다.
 
최근에 류성준, 유형준 두 분이 번역한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늙음을 노래한 시’ 에서 ‘늙는 대로’ 라는 시가 눈에 띈다. ‘맘 편히 밭이랑에 봄빛 지는 걸 보며/ 뜰 앞에 기대니 해 그림자 기운다 / 얼굴 검고 눈 흐리며 머리는 눈 같이 희니/ 늙은 모습에 더 보탤만한 게 없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더니 이사를 해보니 내게도 여기저기서 징표가 드러난다. 전도서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라고 한 말이 엄중하게 다가온다.
 
이전에 살던 곳은 산기슭의 해발 172피트 평지였고 여기는 그보다 높은 338피트라 50m 정도 산 위로 올라온 셈이다. 녹지가 많아 더운 날에도 쾌적한 공기를 느낄 수 있고 딸네 집까지는 2마일 멀어졌으나 오르막길 없이 숲과 숲 사이 평탄한 길로만 다니게 된 장점이 있다.  
 
텃밭 소풍 길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지만 이사하는 여행길은 더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제는 이곳에서 이웃들과 벗하며 쉬엄쉬엄 살기로 했다.
 
높은 지대에서는 아래로 흘러가는 개울을 자주 만난다. 낮은 곳을 찾아 이리 돌고 저리 비껴가며 과욕이나 추월 없이 흘러가는 물에서 이 세상 최고의 선(善)은 역시 물과 같다는 지혜를 배운다.  
 
뻔한 사익을 엉뚱하게도 국익이나 대의(大義)인 양 포장해 국민을 기만하는 권력자들이나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를 갖고 있으면서 부동산 이야기만 나오면 되레 정부에 삿대질을 해대는 서울의 강남 부자들이나, 모두 자연의 섭리에 역행하는 이들이기는 마찬가지다.
 
곧 가을이 온다. ‘더 산골’은 더 높은 산골이라는 뜻도 있지만 특정한 명사 ‘The 산골’ 의 의미로 붙여봤다. ‘The 산골’에 찾아올 2026년의 아름다운 가을을 기다려 본다.

김용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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