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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서 동난 영월 곤드레… "맛 뒤에 숨은 500년 단종의 숨결"

Vancouver

2026.08.25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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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형 기자의 한국 Zoom-In]
캐나다 홀린 K푸드의 고향을 가다… '단종의 밥상'부터 운탄고도 트레킹·한옥스테이까지
특산물 완판 넘어 문화 수출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타고 다시 뜨는 청령포와 장릉
▲영월 선돌

▲영월 선돌

 지난 6월 밴쿠버 인근 랭리 한복판에서 곤드레와 청국장, 김치가 동났다. 익숙한 K-푸드 뒤에 붙어 있던 지명은 ‘영월’이었다. 영월산업진흥원과 지역 8개 업체가 랭리 K-푸드 페스티벌에 들고 온 46개 품목은 행사 기간 조기 완판됐고, 일부 김치와 스낵류는 현지 바이어와 유통 관계자들의 추가 주문으로도 이어졌다.
 
영월산업진흥원은 판매를 넘어 BC 한인사회와 밴쿠버 현지 기업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지역 기업의 캐나다 시장 진출과 경제·문화 교류 확대에도 나섰다. 엄광열 영월산업진흥원장은 당시 “현지에서 확인한 김치와 스낵류의 호응과 즉각적인 재주문 성과를 바탕으로 영월의 친환경 농특산물이 북미 주류 유통망에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밴쿠버에서 만난 영월을 단순히 ‘특산품 수출에 성공한 지방 도시’로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곤드레가 자라는 산과 청국장이 만들어지는 마을, 조선의 어린 왕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역사,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친 탄광의 흔적까지. 상품 뒤에는 영월이라는 지역 전체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영월은 어떤 곳일까. 밴쿠버에서 영월의 맛을 먼저 만난 뒤, 기자는 그 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영월을 찾았다.
 
단종의 이야기를 따라 만나는 영월
 
영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이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왕위를 잃고 1457년 영월로 유배된 단종의 마지막 이야기는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이 이야기를 다시 대중 앞으로 불러내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실제 영월에서 마주하는 단종의 흔적은 스크린보다 훨씬 깊다.
 
나룻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청령포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는 단종이 머물렀던 어소와 관음송이 남아 있고, 멀지 않은 장릉에는 그의 마지막 안식처가 자리한다. 영월 사람들이 지금도 단종을 ‘단종대왕’이라 부르는 데서도 그가 단순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지역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영월의 매력은 단종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강 위로 우뚝 솟은 선돌과 강물이 한반도 모양으로 굽이치는 한반도지형, 밤하늘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별마로천문대, 방랑시인 김삿갓의 흔적을 따라가는 김삿갓유적지, 수억 년의 시간을 품은 고씨굴과 동강의 절경까지 작은 도시 안에 서로 다른 풍경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단종을 만나러 영월을 찾았다가 자연을 보고, 문학을 만나고, 밤에는 별을 올려다보게 되는 것. 그것이 영월이라는 도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월 '박가네'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밥상

▲영월 '박가네' 왕과 사는 남자. 단종의 밥상

영월은 이 역사를 ‘보는 것’에서 ‘먹는 것’으로 확장하고 있다. 영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취재 과정에서 영화를 보며 관광객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장면들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단종에게 밥상을 올리는 장면, 동강에서 다슬기를 잡아오는 장면 등을 보며 ‘영화를 보고 영월을 찾은 사람이 실제 이곳에서 무엇을 먹고 경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단종에 대한 기록과 영월의 식재료가 연결됐다.
 
대표적인 것이 산나물이다. 단종이 영월에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어수리를 비롯해 영월의 산과 들에서 나는 각종 나물, 동강의 다슬기 등이 음식 콘텐츠로 이어졌다. 핵심은 조선시대 왕의 밥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보다 영월의 산에서 나는 나물, 동강에서 잡히는 다슬기처럼 이 지역에서 오래 먹어온 재료를 한 상에 담아 ‘영월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풀어내는 데 있다.
 
산과 강이 가까운 영월의 지형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재료, 집집마다 이어온 장맛까지 더해지면서 단종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재현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영월의 식문화가 된다. 영화가 단종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면, 단종의 밥상은 그 이야기를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맛보고 기억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 고유의 음식은 여행객에게 영월의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지역 농가와 식당, 관광이 서로 연결되는 상생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다.
▲영월 '산속의 친구들'. 단종의 밥상

▲영월 '산속의 친구들'. 단종의 밥상

▲우수 농가맛집 '산속의 친구들' 김성달, 조금숙 부부

▲우수 농가맛집 '산속의 친구들' 김성달, 조금숙 부부

‘산속의친구들’에서 만난 영월의 산과 들, 단종의 밥상
 
기자가 영월에서 직접 찾은 북면의 ‘산속의친구들’에서도 ‘단종의 밥상’이 추구하는 영월의 맛을 한 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단종과 영월의 이야기를 특정한 하나의 메뉴로 재현하기보다,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와 오래 이어온 조리법을 통해 영월의 식문화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날 밥상에는 곤드레를 비롯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산나물이 비빔밥 재료로 올랐고, 가운데에는 청국장이 자리했다. 콩과 나물로 만든 전병과 아침마다 만든다는 손두부, 떡갈비도 함께 나왔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솔순 고추장과 죽염 씨간장이었다. 어린 소나무 순을 따 송진을 제거한 뒤 청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담근 고추장은 약 4년간 숙성됐으며, 음식의 기본 간에는 죽염 씨간장을 사용한다고 했다. 강한 양념이나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산에서 나는 나물과 직접 담근 장의 맛을 살리는 한 상이었다.
 
결국 ‘단종의 밥상’은 하나의 정해진 왕실 음식이라기보다, 단종의 이야기를 매개로 영월의 산과 들, 그리고 지역에서 이어져 온 식문화를 오늘의 여행자에게 전하는 여러 갈래의 음식 경험에 가깝다. 지난 6월 밴쿠버에서 소개됐던 곤드레 역시 이런 영월의 식문화 가운데 한 조각이 태평양을 건너간 것이었다.
▲운탄고도 1330 하이킹 코스

▲운탄고도 1330 하이킹 코스

걸어서 만나는 영월
 
밴쿠버와 BC에서 트레킹은 일상적인 여가 문화에 가깝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숲과 산을 걷는 다양한 코스를 만날 수 있다. 산이 많은 한국 역시 걷기 여행의 매력이 큰데, 영월에는 자연에 역사와 이야기를 더한 길이 있다. 대표적인 ‘운탄고도 1330’은 영월 청령포에서 정선·태백을 거쳐 삼척까지 이어지는 장거리 걷기길로, 과거 석탄을 나르던 폐광지역의 옛길을 트레킹 코스로 되살렸다.
 
단종의 흔적과 김삿갓의 문학, 광부들의 삶 등 서로 다른 시대의 영월을 걸으며 만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하나의 길인 ‘외씨버선길’은 영월과 봉화·영양·청송을 잇는 장거리 걷기길이다. 영월 구간에서는 김삿갓의 문학과 단종의 역사를 자연과 마을 풍경 속에서 천천히 따라갈 수 있다. 걷는 재미에 작은 성취감도 더했다.
 
운탄고도는 패스포트를 받아 코스 곳곳에서 스탬프를 모을 수 있고, 일정 구간의 인증을 마치면 완주 인증서와 기념 메달도 받을 수 있다. 외씨버선길 역시 각 구간의 인증 도장을 모아 완주하면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아름다운 산을 걷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영월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여행의 기록까지 남길 수 있다는 점은 트레킹에 익숙한 캐나다 여행객에게도 흥미로운 요소다.
▲더한옥헤리티지(The Hanok Heritage)

▲더한옥헤리티지(The Hanok Heritage)

한옥에서 보내는 밤까지 ‘영월 여행’
 
영월은 숙박까지 여행이 되는 도시다. 남면의 ‘더한옥헤리티지’는 전통 한옥의 미감을 현대적인 호텔 방식으로 풀어낸 곳으로, 전통 복식과 국악, 명상 등 한국적인 경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반면 주천면의 ‘조견당’은 200년에 가까운 시간을 품은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한옥스테이다. 하나는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했고, 다른 하나는 오래된 집의 시간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특히 영월의 한옥은 강원도의 산세와 어우러지며 전라도나 경상도의 한옥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하루 동안 잘 먹고, 걷고, 보고, 자연 속에서 푹 쉬다 보면 그 하룻밤 자체가 영월 여행의 기억으로 남는다.
▲영월 보석사 앞 세심다원

▲영월 보석사 앞 세심다원

K-푸드가 열고, ‘영월’이 이어가는 세계화
 
지난 6월 밴쿠버에서 완판된 곤드레와 청국장, 김치는 영월을 알리는 첫 접점이었다. 하지만 영월의 세계화는 특산품 수출에만 머물지 않는다. 단종의 역사와 김삿갓의 문학, 산과 강, 걷는 길과 한옥처럼 영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세계와 연결하는 것이 더 큰 목표다. 밴쿠버에서 영월의 맛을 만났다면, 다음에는 그 맛이 태어난 영월을 직접 만나볼 차례다.
 
 

밴쿠버 중앙일보 엄주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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