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요즘 박경리(1926~2008)의 젊은 시절 사진을 활용한 신문 광고를 하고 있다. 대작가가 1954년 초부터 1년 남짓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은행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환기해 1899년 대한천일은행으로 출발한 은행의 역사성을 부각하겠다는 취지다.
1970~80년대 『장길산』 『객주』 『태백산맥』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대하소설 전성시대의 초석을 놓은 『토지』의 작가로 너무나 유명하지만 박경리의 세계도 출발점은 자신의 체험이었다. 4·19를 통과하며 작가를 연상시키는 작중 인물이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토지』의 광활한 서사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것.(문학평론가 류보선)
서울 소공로 우리은행 본점 지하에 전시 중인 1950년대 은행 직원 명부에 박금이(박경리의 본명)는 여자 행원이라고만 돼 있다. 실제 한 일은 고객을 상대하는 창구 직원이 아니라 조사과 직원이었다고 한다.(이승윤 인천대 교수, 토지학회 회장) 55년 등단 이후 57년에 발표한 단편 ‘전도(剪刀’에 나오는 은행 조사과 직원 ‘숙혜’는 은행 경험을 고스란히 살린 것이다.
경과와 결말을 알았더라면 시작할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텐데, 생전에 박경리는 『토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외할머니가 들려준 거제도 이야기 속 선명한 이미지가 계기였다고 답한 적이 있다. 누렇게 익은 벼를 수확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호열자(콜레라)가 기승을 부린 한 마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녀가 한 사내를 따라가 객줏집 설거지를 하며 지쳐 하는 모습을 봤다는 누군가의 목격담에서 비롯됐다는 얘기였다.
삶을 극단으로 몰고 간 식민 권력 아래 끈질기게 생존을 도모한 민초들의 이야기로 읽을 때 『토지』는 생명주의 소설이 된다. 철두철미한 환경주의자였던 박경리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싸구려 상품을 많이 생산해 쓰고 버리니까 쓰레기가 많이 쌓인다”며 “돈이 들더라도 고급품을 생산해 1년 쓰던 것을 10년 쓰게 해야 쓰레기가 줄어든다”고 한 적이 있다.(중앙일보 2004년 1월 3일자 3면) 과시와 선망이 동력인 21세기 자본주의 현실에 당장 적용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하지만 심상찮은 기후 변화 현실 앞에 다시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