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사회 전체의 역량을 끌어올렸다. 더 많은 사람이 학교에 가고 대학에 진학하며 더 높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게 된 것은 산업화와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선도국가의 경쟁력은 평균의 지속적인 상승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들이 묻지 않는 질문을 던지고,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며, 세계적 수준의 탁월성을 만들어낼 사람을 키워야 한다. 동시에 능력과 잠재력을 갖고도 기회 구조 밖에 머물렀던 사람들을 지원해야 한다. 인재양성의 과제는 이제 평균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평균 양 옆의 가능성을 어떻게 발견하고 키울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새 인재 양성 실험대 될 수 있어
재원보다 인재 키우는 방식 중요
공익 영역도 최고 인력 투입해야
수혜자가 다음 세대 키우는 유산
보편성과 형평성을 중시하는 공교육은 본질적으로 일정한 평균을 기준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입시와 교육과정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교육정책은 깊이 정치화돼 있다. 자사고를 비롯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지만, 입시라는 큰 틀과 형평성·다양성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본래의 뜻을 펼치기 쉽지 않았다.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학과와 전공, 학점과 교과과정이라는 견고한 구조가 있고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적지 않은 조직적 비용이 든다.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로 새로운 인재육성 모델에 투자할 여력도 줄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간 공익재단의 역할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공교육이나 대학을 대신하자는 뜻이 아니다. 기존 제도에서 구조적으로 하기 어려운 일을 시도하는 새로운 인재양성의 ‘실험대(test bed)’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실험은 두 방향을 함께 보아야 한다. 하나는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능력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능력은 있지만 가정환경이나 지역, 정보와 네트워크의 부족으로 새로운 기회의 창을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둘 다 공익의 영역이다. 탁월한 사람이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이는 스펙의 추가가 아니라 남다른 소명감을 가진 사람에게 그 꿈이 실현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작업이어야 한다.
이미 상당한 공익기관의 경험이 축적되어 왔다. 삼성복지재단과 호암재단, 관정재단, 금호문화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보육과 장학, 학술과 문화예술 분야에서 각자의 전통을 만들어왔다. 현대차 정몽구재단도 과학기술, 문화예술, 국제협력, 사회통합을 인재육성의 축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해외유학 장학을 통해 1000명이 넘는 박사학위자를 배출했다. 과거에는 세계 최고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인재정책이었지만, 이제는 자기설계 프로젝트와 멘토링, 초기 연구자부터 사회 진출 이후의 성장과 기여까지 연결하는 열린 생태계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최종현학술원은 첨단과학기술과 지정학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지식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고,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사회적 가치의 측정과 확산을 연구해 왔다.
중요한 것은 재원의 크기보다 그것을 사람과 지식으로 전환하는 역량이다. 우리는 돈을 버는 일에는 최고의 인력을 투입한다. 기업은 새로운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을 하고 수없이 실패한다. 반면 돈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좋은 뜻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공익재단에서도 기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규정에 맞게 장학금과 연구비를 지급하는 것을 중요한 성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재양성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한 사람이 학자로 성장하는 데 10년, 20년이 넘게 걸리고, 젊은 예술가에게 제공한 작은 기회가 언제 큰 성취로 이어질지 알기 어렵다. 누구를 찾아낼 것인지, 어떤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 언제 지원하고 언제 스스로 걸어가게 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공익에도 사람을 키우는 방법을 연구하는 최고의 인력이 필요하다.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그 결과를 추적하고, 실패와 시행착오까지 축적해 다시 모델을 바꾸는 과정에는 최고의 아이디어와 인력, 그리고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과거 장학생이 세계적인 학자가 되고, 지원받았던 예술가가 다음 세대의 멘토가 되고,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사람이 돌아와 더 나은 프로그램을 설계한다면 공익의 효과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세대의 수혜자가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레거시가 생긴다.
민간의 공익활동에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공익활동을 ‘통제 가능한 틀’ 안에만 묶어둘 수는 없다. 공익성에는 엄격하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실험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 민간 공익재단은 이런 실험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그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재단의 역량뿐 아니라, 새로운 공익의 모델을 기다려줄 수 있는 사회의 역량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