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빈 뉴섬(59)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주민들에게 미 연방정부의 아동 투자계좌인 ‘트럼프 계좌’ 가입을 권했다. 2025~28년 태어난 미국 시민권 아동에게 정부가 1000달러(약 145만원)를 넣어주는 제도다. 뉴섬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 가장 뛰어난 일 중 하나”라며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격렬하게 싸워온 민주당 정치인이 내놓은 이례적인 찬사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2025년 1월 24일(현지시간)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말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사흘 뒤 다시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우편투표 제한 행정명령을 막아둔 하급심 결정의 효력을 정지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막겠다며 트럼프가 꺼내든 이 행정명령은 연방정부가 우편투표 대상자 명단을 관리하고, 명단에 없는 유권자에게는 투표용지를 배달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등록 유권자 모두에게 투표용지를 보내고, 80% 이상이 우편으로 투표하는 캘리포니아에는 민감한 사안이다. 결정 직후 뉴섬의 주지사 공식 소셜미디어(SNS) 계정에는 대문자가 섞인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오웰식(전체주의적) 규칙을 막기 위해 다시 소송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트럼프식으로 트럼프에 맞불 거울치료
대문자, 느낌표, 정적에게 붙이는 유치한 별명, 인공지능(AI) 합성사진…. 지난해 8월부터 뉴섬 주지사실 공보 계정에는 트럼프의 SNS를 빼닮은 게시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시물 끝에는 ‘GCN’이라는 서명도 붙었다. 개빈 크리스토퍼 뉴섬의 이니셜로 트럼프가 도널드 존 트럼프의 약자 ‘DJT’를 서명처럼 쓰는 방식까지 따라 한 것이다. 뉴섬은 “트럼프 앞에 거울을 들이댈 때”라고 설명했다.
선거구 싸움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트럼프에 대항했다. 트럼프의 압박을 받은 텍사스가 공화당 의석을 최대 5석 늘릴 선거구 지도를 만들자 뉴섬도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 의석을 5석 늘릴 지도로 맞섰다. 독립된 시민위원회의 선거구 획정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에도 뉴섬의 개편안은 지난해 11월 주민투표에서 64.4%의 찬성을 얻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공보실이 2025년 8월 18일 공식 X에 올린 게시물. 인공지능(AI)으로 트럼프 지지자인 록 가수 키드록을 엉클샘처럼 표현한 뒤 “키드록이 당신에게 개빈 뉴섬을 지지하라고 한다”고 적고 “수락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뉴섬 주지사 공보실 X 캡처
트럼프와 맞설수록 커진 잠룡 체급
이런 ‘거울치료’가 한창이던 시기에 웃어넘기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8월 뉴섬이 로스앤젤레스(LA)에서 선거구 개편 기자회견을 열자 헬멧과 복면 차림의 무장 국경순찰대원들이 행사장 앞에 몰려왔다. 주지사 기자회견에 무장한 연방 요원들이 등장한 것은 생경한 풍경이었다.
트럼프의 연방정부가 이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뉴섬과 각을 세우는 이유는 하나다. 그가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이기 때문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2025년 8월 14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텍사스의 선거구 개편에 맞선 캘리포니아 연방 하원 선거구 개편안을 발표하며 주민투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섬의 맞불 전략이 통했는지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판가름 난다. 새 선거구가 민주당의 하원 탈환에 힘을 보태면, 그는 ‘트럼프의 방식으로 트럼프를 꺾었다’고 내세울 수 있다. 트럼프의 문법을 빌린 뉴섬은 어떻게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