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도박은 일종의 ‘주홍글씨’다. 도박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 그 사람은 발붙일 곳이 없다. 후회도 해명도 통하지 않는다.
지난 7월 23일 광주지방법원. 전 야구선수 임창용(50)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 "
2019년 필리핀에서 도박 자금 1억5000만원을 빌린 뒤 8000만원을 갚지 않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던 그는 이날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검찰은 상고하지 않았다.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여론은 싸늘했다. “도박중독자는 사회에서 격리해라” “도박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2015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로 역투하는 임창용. 그해 삼성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거진 해외 원정 도박 의혹으로 두산에 패하면서 5연패에 실패했다. 중앙포토
임창용은 한국 야구계의 레전드였다. 1995~2018년까지 24년 동안 한·미·일 통산 141승, 386세이브를 올렸다. 한국 투수 가운데 그보다 많은 세이브를 거둔 사람은 오승환(64승, 549세이브) 한 명뿐이다. 오승환은 마무리 전문이었지만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00승, 300세이브를 함께 넘긴 선수는 임창용이 유일하다. 선발과 세이브를 합하면 선동열(156승, 230세이브)을 넘어선 대기록이다.
그러나 도박은 그의 화려했던 야구 인생을 밑바닥까지 추락시켰다. 관련 사건은 3건이다.
- 2014년 마카오에서 4000만원대 원정 도박으로 2016년 벌금 1000만원 선고
- 2019년 필리핀에서 도박 자금 1억5000만원을 빌려 8000만원을 갚지 않아 2026년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 선고
- 2021년 세종시 사설 카지노바에서 1억5000만원 상당의 도박으로 2022년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선고
그런데 판결문과 기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그는 왜 처음 카지노에 갔나. 처벌받고도 다시 도박한 이유는 뭔가. 선수 시절 거액을 벌었던 그가 어쩌다 수천만원을 갚지 못해 법정에 섰을까. 그는 정말 ‘도박중독자’였나.
그동안 임창용이 도박에 빠진 이유와 과정은 베일에 가려져 왔다. 그는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해명한 적이 없었다.
그의 기억과 아픔은 도박에 관한 교훈적 울림을 던질 수 있다. 취재진은 여러 경로로 그와의 만남을 타진했다. 야구 스타의 추락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임창용은 신중한 고민 끝에 중앙일보와 만났다. “있는 그대로만 써달라”는 게 유일한 승낙 조건이었다. 그가 2019년 은퇴 이후 언론과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지난 8월 12일 광주의 한 식당에서 만난 임창용. 그는 이날 도박 사건에 대한 후회와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장정필 객원기자
지난 8월 12일 광주의 한 식당. 짙은 색 셔츠에 흰 바지를 입은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하체가 길어 182㎝의 키보다 더 커 보였다.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마지막 타자를 상대하던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일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활달한 성격이 아니었다. 대화 내내 차분한 말투였다. 말을 꾸미거나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원래 말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광주와 대구, 서울을 오가며 다섯 차례 만남이 이어졌다. 임창용은 술을 못 했다. 자택에서, 식당에서, 차 안에서, 공원에서 만나 도박과 야구, 인생 여정을 채집했다. 그는 지난 세월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야구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다.
Q : 처음 카지노를 가본 건 언제인가.
A :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당시 25세)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있는 스타시티 카지노에서 처음 접했다. 그때 블랙잭이란 게임을 해봤는데 ‘좀 재밌네’라고 느꼈다.
임창용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간의 사건들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설명하고 도박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오해도 풀고 싶어 했습니다. 야구와 도박, 돈, 인생…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임창용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심층 취재했습니다. 더중앙플러스 ‘임창용의 도박 고백’은 총 5회에 걸쳐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