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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비극적 최후 내몰았다…소환조사 후 22일간 무슨 일이

중앙일보

2026.08.25 13:00 2026.08.2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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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행렬이 노제를 지내기 위해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9년 5월 29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행렬이 노제를 지내기 위해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21화. 소환조사와 죽음 사이 22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구속과 불구속 기소의 선택만 남은 상태였다. 2009년 4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의 소환조사를 마친 대검 중앙수사부는 그를 사법처리하기로 했다. 노무현 수사를 지켜본 대검찰청 고위직 출신 A의 증언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사이에 600만 달러가 오간 객관적 사실이 확인됐다. 박연차의 자백과 관련자들의 증언, 노 전 대통령과 부인·아들·딸의 진술, 계좌추적 결과, 정황증거를 모두 종합해볼 때 검찰 입장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혐의 없다’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

600만 달러와 피아제 시계(2억원)가 그의 가족에게 넘어갔지만 “노무현을 보고 준 돈”이라는 박연차의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가 성립한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었다. 박연차가 준 거액은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대가성’ 있는 금품 로비라고 봤다.

수사의 마무리 단계인 소환조사 직후 곧바로, 늦어도 하루이틀 안에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수사 원칙이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소환조사 전부터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여론 수렴을 거쳤다. ‘불구속’이 우세했다. 노무현의 소환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대검 간부회의에서도 불구속은 대세였다. 불구속 기소를 결단한 배경을 A가 설명했다.


"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임채진 총장은 불구속 기소로 마음을 굳혔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뇌물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직전 대통령에게 쇠고랑을 채우는 모양새(구속)는 국격(國格)을 실추시킨다고 걱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와 가족의) 돈거래를 퇴임 후에 알았다’고 맞서고 있으니 방어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

검찰은 노무현 측에 불구속 기소 방침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으니 법정에서 다투라는 신호였다.

생전에 노무현도 법정 투쟁을 다짐했다. 서거 직후 노 전 대통령의 개인 컴퓨터에서 찾았다는 ‘추가진술 준비’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2009년 5월 어느 날 생전에 작성한 것이라고 한다.(『내 마음속 대통령』, 노무현재단 2009년 10월)


" 도덕적 책임은 통감합니다. 법적인 책임은 별개로 다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 내려질 사법적 판단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제가 감당해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법적 절차에서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2009년 5월 29일 서울 대한문 앞에 운집한 시민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를 지켜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09년 5월 29일 서울 대한문 앞에 운집한 시민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를 지켜보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런데 소환조사 이후 3주가 넘도록 검찰은 구속도 불구속도 아닌 어정쩡한 채 노무현의 신병처리를 미적댔다. 그사이에 노무현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4월 30일 소환조사에서 5월 23일 투신까지 22일 동안 도대체 무슨 사달이 벌어졌길래 노무현은 비극적 최후를 선택했나. 구속과 불구속 기소 사이에서 왜 검찰은 우물쭈물했나. 노무현 사건 수사와 죽음에 얽힌 비밀에 다가가려면 이런 의문의 통로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 이유: 구속 수사에 미련을 둔 강경파
수사팀을 중심으로 법적 형평성의 문제를 들어 불구속에 반대하며 구속을 고집했다고 한다. 당시의 속사정을 알 만한 자리에 있던 검찰 고위직 출신의 C가 설명한 논리다.

" 중수부 수사는 검찰총장이 주임검사다. 총장이 불구속하라면 수사팀으로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하는 건 법적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이 수사팀에서 제기됐다. ‘박연차 리스트’에 올라 구속된 다른 정·관계 인사들은 훨씬 적은 액수의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는데도 구속됐다. 노무현을 불구속기소한다면, 이명박 대통령(MB)의 절친이자 권력 실세로 불리던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명분이 약해진다. "

검찰 징비록 21화는 노무현을 비극적 최후로 내몬 내막을 추적했다.
· 구속 수사에 미련을 둔 강경파
· 600만 달러 외에 의문의 40만 달러 등장
·“불구속하면 좋겠다”…국정원의 불법적 개입 배경
· 노무현에 대해 성난 여론을 맹신한 검찰
· 서울중앙지검 창고에 보존된 노무현 사건 기록
· 역사의 비밀로 영원히 남겨야 하나

(계속)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무현 비극적 최후 내몰았다…소환조사 후 22일간 무슨 일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6024
‘칼의 춤, 검찰 징비록’ 또 다른 이야기
“김건희만 구속했어도 살았다” 78년 역사 자멸 이끈 檢의 패착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4404

文은 ‘칼잡이 尹’ 쓸모 알았다…서로에게 재앙된 4번의 인연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6347

尹사단 6년 9개월 왕좌의 게임…그 진군 끝에 78년 검찰 망했다③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8190

“죄다 형님·동생…그때 변했다” 檢에 독배 된 ‘범죄와의 전쟁’④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0053

“도시락에 쪽지 숨겨져 있었다” ‘노태우 구속’ 검사 놀란 이유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2014

전두환 “뭐? 뇌에서 뭐가 뽑혀?” 단식 중단후 檢조사 응한 사연⑥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4006

“아버지입니까 檢총장입니까” 구속 된 그때, YS 차남의 충격⑦-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5845

“차남 구속해라” YS가 시켰다?…“각하가 웁니다” 檢에 온 전화⑦-2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7658

DJ 삼남 구속, “만세” 터졌다…검사실 ‘안정환 골든골’ 비화⑧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9576

“DJ 차남 구속 직후 사표 썼다” 임기 못 채우고 떠난 검찰총장⑨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1353

“형, 술 사줘” 노무현과 친했다…DJ때 물먹은 안대희 발탁 전말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5225

盧 “대통령 기분 좀 내려는데”…SK 쳐들어간 검찰의 노림수⑪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7213

“문지방을 왜 자꾸 넘습니까” 안희정 구속영장에 盧의 분노⑫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39124

스위스 은행에 송금된 현대 비자금의 3000만 달러의 행방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1191

“느그 살라믄 대선자금 키워라” 검찰, 靑에 승부수 던진 이유⑭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3151

“盧 퇴임후 재수사 없게 해달라” 靑민정실 요구, 檢은 거부했다⑮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4953

21년 전 “검찰사 치욕의 날”…법무장관·檢총장 엇갈린 증언⑯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6725

고대훈.백일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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