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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인생의 꽃밭에 피는 꽃

Chicago

2026.08.2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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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

이기희

인생에 되돌이표는 없다. 되돌아 갈 수 없다. 그 때 왜 그랬을까 후회해도 소용없다. 나이 들면, 지난 날들은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짝 잃은 신발을 찾는 것처럼 허전하다.
 
부귀영화 누린다고 끝까지 호화롭게 산다는 보장 없고,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버티다 보면 소리 소문 없이 쨍하고 해뜰날이 오기도 한다. 오늘 건강하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아픈 내일도 치유의 햇살이 떠오른다.  
 
‘다시 돌아가라 하면 싫어요 난 못가요 / 비단옷 꽃길이라도 이제 다시 사랑 안 해요 /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 아파도 너무나 아파 꽃길은 또 무슨 꽃길(중략) 몰라서 걸어온 그 길 알고는 다시는 못 가 / 아파도 너무나 아파 사랑은 또 무슨 사랑 / 꽃길은 또 무슨 꽃길’-윤수현의 ‘꽃길’ 중에서
 
한 시절의 사랑과 행복이 스쳐 지나간 뒤, 그리움과 쓸쓸함은 피었다 지는 꽃처럼 인연의 아름다움과 허망함을 견디게 한다. 소중했던 시간만큼 자기 삶의 길을 걸어가려는 강인한 위로와 다짐을 담고 있다.
 
과거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후회와 자책, 연민과 뉘우침, 회환과 죄책감. 고통과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 지은 죄가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어서 나는 다시 돌아가 시작할 용기가 없다.  
 
‘오디세이’는 죄책감이라는 바다를 건너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오디세이아는 신념의 파괴와 수용에 관한 대 서사시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한 인간의 내면에 스며든 고독한 죄책감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밀도 있게 탐구한다. 세계가 추앙하는 영웅 오디세이는 전쟁 및 귀환의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와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책무와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실존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가혹한 괴리를 체감한다.  
 
칼립소와 지내던 그의 세월은 단순히 유혹에 빠진 시간을 넘어서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인간적 방어기제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휘기누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유부남을 사랑한 바다의 여신은 두 아들을 두었고 불로불사의 삶을 포기하고 자살한다.  
 
‘세계 혹은 타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의 괴리는 삶에 고통을 준다.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각은 바로 그 죄책감을 정면으로 인지하는 자세다.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사는 게 훨씬 가볍고 쉬워진다. 변장과 기만은 어리석다.  
 
인생이 허무한 나그네 길 인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시계의 추를 흔드는 죽음의 공포 없이 철모르고 살 때가 좋았다. 죽는 것보다, 잘 사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을 한다. 젊었을 때는 남 탓을 했지만, 나이 들면 모든 것이 내 탓이다.
 
인생은 한 마리 날파리와 같다. 인생이란 허공에 떠돌다가 엉뚱한 곳에 안주한다. 언제 목숨이 위태로운 줄도 모르고 잠시 영원을 꿈꾼다. 두려움은 인생을 지치게 만든다.  
 
한창 살 나이에 후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살아갈 기운이 빠진다. 산다는 것은 이제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슬픈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온 몸에 힘이 공허하게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할 기분이 안 난다. 움직이던 모든 것이 땅밑으로 가라앉는다.
 
누군가의 작별은 내 곁을 떠난 정겨운 얼굴들을 보낸 슬픔으로 생의 수레바퀴를 멈춘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숙생’은 생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인생의 꽃밭에 꽃씨를 뿌리는 사람은 불행하지 않다. 땅 속 깊이 고통과 슬픔을 묻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향기롭게 사랑으로 다가온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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