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셜미디어(SNS)에는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일이 없는 듯하다. SNS를 보다 보면 ‘도대체 저 순간에 카메라를 켤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싶은 영상이 적지 않다.
최근 ABC7 방송에 따르면 뉴욕주 버팔로에서 LA 인근 컬버시티로 이사 온 중학교 교사 하이디 위드머는 입주 첫날부터 윗집에서 들려오는 ‘쿵쿵’ 소리에 시달렸다. 몇 주 뒤 우연히 윗집 주민인 캐롤(86)을 만난 위드머는 소음의 정체를 알게 됐다. 캐럴은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고, 그동안 층간소음이라고 생각했던 소리는 그가 보행기를 끌면서 나는 소리였다.
여기까지는 오해가 이해로 바뀐 따뜻한 이야기다. 위드머는 이후 이 사연을 SNS에 공개했다. ‘짜증 났던 소음은 캐럴의 보행기 소리였다’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위드머가 머리를 부여잡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을 보면서 정작 눈물보다 카메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영상에 담겼다는 것은 그 앞에 카메라를 세우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촬영을 마친 뒤에는 영상을 확인하고 편집해 SNS에 올리는 과정도 거쳤을 것이다.
감정까지 콘텐츠가 되는 시대다. SNS에서는 이제 개인적인 순간도 어렵지 않게 콘텐츠가 된다. 연인과 헤어진 뒤 우는 모습, 직장에서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의 표정, 병원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한 순간까지 공개한다. 부부싸움이나 가족 간 갈등 등 지극히 사적인 순간마저 카메라 앞에서는 수십만 명이 지켜보는 콘텐츠로 변한다.
최근에는 운전 중 타이어에 펑크가 난 사람이 도로변에 차를 세운 뒤 삼각대까지 설치하고 차량을 통제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도 봤다. 차량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빠지지 않았다. 완성된 영상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삼각대를 꺼내 위치를 잡고 촬영 버튼을 누르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SNS를 보다 보면 그래서 영상에 찍힌 장면보다 카메라 뒤의 모습이 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여주려 할까. SNS에서는 타인의 관심이 숫자로 표시된다. ‘좋아요’와 댓글, 조회 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즉각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반응을 얻은 게시물은 더 널리 노출되고 때로는 수익으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보상은 또 다른 콘텐츠를 부른다. 더 많은 관심을 얻으려면 평범한 일상보다 눈길을 끄는 장면이 필요하다. 행복한 모습뿐 아니라 슬픔과 아픔, 사고와 갈등까지 공개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보여주기가 반복되면서 현실과 콘텐츠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 생겼을때 이를 기록했다면 이제는 기록할 장면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모습까지 나타난다. 무엇을 경험했는지보다 어떻게 촬영됐는지가 중요해지고,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반응에 더 민감해진다.
SNS 과의존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게시물을 올린 뒤 ‘좋아요’와 댓글을 수시로 확인하고 기대만큼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실망한다. 다른 사람의 화려하게 편집된 일상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피로감이 쌓인다. 수십 초짜리 영상마다 누군가의 ‘나를 봐달라’는 요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평가받으려 한다. SNS가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에서 일상을 연출하는 무대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 자연스러운 행동도 연출이 되고, 개인적인 감정조차 조회 수를 얻기 위한 소재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눈물을 보면서 ‘저 카메라는 누가 켰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카메라 앞에 진열되는 것은 더는 행복한 일상만이 아니다. 슬픔과 불행까지 꺼내놓고 외친다. ‘나를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