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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치어리더' 때려치운 칼슨, 우파 운동가 신분 상승

Los Angeles

2026.08.2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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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의 위험한 남자 터커 칼슨

트럼프 재선 기여한 폭스 앵커 출신
최근 "사람들 오도 사과" 등 돌려

언론 인터뷰선 거취 의미심장 힌트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 3위에 올라

헝클어진 머리 등 소탈한 모습 인기
이라크전 지지했지만 이란전 거부감
반엘리트 외치지만 상류사회 내부자
터커 칼슨이 2024년 10월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터커 칼슨이 2024년 10월 27일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대중적 인기가 어느 수준을 넘으면 정치적 운동 에너지를 획득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시대의 분노를 먹고 자란 인기일수록 그렇다. 요즘 미국에선 폭스뉴스 앵커 출신 터커 칼슨(57)이 그 위험한 경계선에 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치어리더였던 그가 얼마 전 트럼프와 떠들썩하게 갈라섰다. 4월 20일 공화당 전략가인 동생과 대담하면서 "사람들을 오도한 데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했다. 칼슨은 트럼프의 재선에 확실히 기여했고, 트럼프도 칼슨을 보수의 스타로 띄워줬다. 트럼프의 초청으로 칼슨은 공화당 전당대회와 유세장에서 대중연설을 여러 번 했다. 서로 이해가 맞았던 셈이다.
 
그러다 이젠 등을 돌렸다. 그 타이밍이 묘하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의 인기는 뚜렷한 하락세다. AP통신과 시카고대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의 5월 조사에선 37%였다. 역대 최저였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6년 차와 비슷하다. 트럼프 이후를 바라보는 인사들에겐 노선을 조정할 시기가 된 것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10월 31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데저트 다이아몬드 아레나에서 열린 '터커 칼슨 라이브 온 투어'에서 터커 칼슨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

공화당 대선 후보이자 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024년 10월 31일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의 데저트 다이아몬드 아레나에서 열린 '터커 칼슨 라이브 온 투어'에서 터커 칼슨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

 
나폴레옹 vs 뉴스가 키운 선동가 평가 갈려
 
이를 반영하듯 칼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트럼프와 결별 직후 더 커졌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5월 2일 그를 매거진 표지모델로 삼아 긴 인터뷰를 했다. 내용은 방송인의 회고보다 정치인의 소신 표명에 가깝다. 그는 청년층의 경제적 박탈감을 반복해 언급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 기회"라고 주장했다. 청년층의 급진화와 경제적 불평등은 그 기회가 차단된 탓이라 했다. 여기에 "앞으로 내 정치적 대화의 대부분은 경제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치인의 화법이었다.
 
그는 또 양당을 모두 공격했다. 민주당은 표를 위해 비시민권자를 들여오는 데 혈안이고, 공화당은 외국과의 전쟁에 돈 쓰느라 여념이 없다고 했다. 이어 "미국인을 우선시하는 정당은 없다"고 단언했다. 1992년 제3 후보로 대선에 나온 로스 페로(1930~2019)의 말을 빼다박았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선 의미심장한 힌트를 흩뿌렸다. 묻지도 않았는데 "어떤 선거에도 나가지 않는다"고 말한 게 우선 수상하다. 트럼프 이후를 두고 공화당에선 거대한 쟁탈전이 벌어졌다면서 "나는 그 한복판에 있다"라고도 했다. 해설자를 넘어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임을 자인한 것일까. 실제 정치베팅 플랫폼 폴리마켓에선 공화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JD 밴스 부통령,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에 이어 칼슨이 3위에 올라 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보다 위다.
 
그는 분명 트럼프 2기 정부의 인사이더였다. 트럼프와 수시로 통화했다. 둘이 가깝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그게 칼슨에겐 자산이기도 했다. 그의 인사이더 네트워크는 트럼프에 국한하지 않는다. 밴스와는 2016년 처음 만나 가까워졌다. 밴스에게 칼슨은 정치 멘토와 다름없다. 칼슨은 2024년 대선에 나온 트럼프와 2시간 통화하며 밴스를 러닝메이트로 천거했다. 독자 출마했다면 공화당 표를 잠식할 뻔했던 로버트 케네디를 트럼프 캠프에 연결해준 것도 칼슨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그의 과거 방송과 비교하면 차이가 선명하다. 타인의 말을 전하던 앵커 시절과 달리 우파 이념을 설파하는 운동가라도 된 듯 말한다. 마치 포스트 트럼프 시대 우파의 문법을 새로 쓰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그가 일관성 있는 이념을 지녔던 건 아니다. 그는 입장을 바꿀 뿐 아니라 모순된 입장을 동시에 취하기도 한다. 그는 2004년까지 네오콘에 동조해 이라크전을 지지했고, 2018년까지 자유지상주의에 공감했다. 그 뒤 외교적으론 고립주의, 경제적으론 반(反)대기업으로 돌아섰다. 공화당 우파는 자유무역, 개입 외교, 친이스라엘 노선이지만 칼슨은 이에 모두 반대한다. 특히 이란전처럼 외국과의 전쟁에 거부감을 보인다. 스스로는 고(古)보수주의(Paleo-conservatism)로 분류한다.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 평론가 패트릭 뷰캐넌. MAGA의 사상적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사진 위키백과]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 평론가 패트릭 뷰캐넌. MAGA의 사상적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사진 위키백과]

이념적으로 그와 가장 비슷한 이가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던 패트릭 뷰캐넌(88)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트럼피즘의 사상적 선구자다. 1990년대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이민 제한, 반글로벌리즘, 제조업 보호, 문화보수주의를 주장했다. 냉전 이후 공화당 주류 노선에 반기를 든 것이다. 세계화가 보수의 가치인 가족.종교.공동체를 훼손했다고 본 점에서 그는 트럼프보다 칼슨에 더 가깝다. 칼슨은 젊은 시절 뷰캐넌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어느새 그를 닮아가고 있다. 그를 '뷰캐넌 2.0'으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차이는 뷰캐넌보다 칼슨이 훨씬 탄탄한 지지층을 지녔다는 데 있다. 그의 SNS 팔로워는 2200만 명에 달한다. 그의 영상은 이란전 발발 8주일 만에 평균 568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2월 말 이후 터커 칼슨 네트워크(TCN)에 게재된 영상의 총 조회 수는 15억3000만 회가 넘는다. 우파의 불만과 분노, 고립주의 정서가 그의 플랫폼으로 응집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대중에게 소탈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자다 나온 듯 헝클어진 머리카락, 헐렁한 셔츠와 바지, 눈을 가늘게 뜨고 짓는 떨떠름한 표정, 신경질적인 고음의 목소리, 비웃는 듯한 미소와 말투… 시청률을 위해 고안된 페르소나다. 기득권 엘리트를 비난하며 평범한 미국인을 대변해주는 데 최적화된 외피다. 꾸몄지만 진짜처럼 보인다 해서, 이를 '진정성 있는 가식(authentic artificiality)'이라 한다. TV는 원래 진짜보다 진짜 같은 얼굴을 좋아한다.
 
대중이 어디에 끌리는지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강렬한 경험을 통해서다. 1980년 레이건과 카터의 두 번째 대선 토론 직전이었다. 담임이 보수 성향의 칼슨에게 카터 역을, 진보 성향의 급우 러셀에겐 레이건 역을 맡겨 모의토론을 시켰다. 러셀은 레이건의 정책을 열심히 외워 토론했지만 칼슨은 레이건을 공격하기만 했다. 학생들의 투표 결과는 칼슨의 승리. 어린 칼슨은 설득보다 공격이 사람들에게 더 잘 먹힌다는 점을 배웠다고 한다. 최근 칼슨의 전기를 쓴 작가 제이슨 젠걸의 소개로 알려진 일화다.
 
칼슨이 기득권 엘리트를 혐오한다지만 그들과 벽을 쌓고 사는 건 아니다. 2014년 아들이 조지타운대에 지원했을 때였다. 칼슨이 추천서를 부탁한 상대가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이었다. 칼슨 부부와 친하게 지내던 헌터는 흔쾌히 수락했다. 1년 뒤엔 불륜 의혹으로 난처해진 헌터가 칼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반엘리트의 얼굴을 한 칼슨도 실제론 워싱턴 상류 네트워크의 내부자였다.
 
칼슨은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컸다. 부친 딕 칼슨(1941~2025)은 기자와 은행 임원을 거쳐 미국의 소리(VOA) 국장, 세이셸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냉전 보수주의자였다. 모친 리사 맥니어 롬바르디(1945~2011)는 부잣집 출신이다. 19세기 '캘리포니아 목축왕' 헨리 밀러(1827~1916)의 4대손이다. 넉넉한 환경 덕에 칼슨은 일류 교육을 받았다. 스위스의 국제학교를 거쳐 로드아일랜드의 명문 사립고 세인트 조지 보딩스쿨을 나왔다. 졸업 후엔 트리니티대에 진학했다. 아이비리그 문턱에서 멈춘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가는 학교다. 백인 노동계층의 대변자 이미지와 그의 성장 배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 리더 경쟁 이미 시작
 
이제 그는 보수층의 인기를 발판 삼아 우파 운동의 리더급 반열로 올라가는 중이다. 트럼프와 갈라선 뒤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경제와 세대 갈등, 그리고 반전.반엘리트 담론으로 우파 포퓰리즘을 재구성하려는 흐름에 올라탔다. 그런 면에서 그를 단순히 극우 논객으로 치부하긴 어렵다. 그는 방송인과 정치인, 선동가와 운동가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는 트럼프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를 두고 헤겔이 '세계정신의 현신'이라 부른 나폴레옹에 빗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케이블 뉴스가 키운 선동가로 폄하하는 이도 있다. 그에 대한 열광과 혐오는 중간지대를 허락지 않는다.
 
여태껏 그는 책임지는 위치에 서 본 적이 없다. 가진 것도, 잃을 것도 많다. 칼슨 소유의 매체 두 곳(TCN, 데일리 콜러)은 그가 정치에 뛰어드는 순간 중립성과 상품성을 잃고 만다. 밴스 밑에서 일하는 그의 아들의 입장도 애매해진다. 이래저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선까지 시간은 아직 남았다. 누가 최종 후보가 될지 모른다. 분명한 건 포스트 트럼프 시대 MAGA의 새 리더를 향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어느 별이 가장 밝은지는 해가 져봐야 안다.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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