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반도체·피지컬AI·데이터센터를 대한민국 AI 대도약의 ‘삼각축’이라 했다. 반도체는 크레인, 데이터센터는 부두, 피지컬AI는 현실을 오가는 선단이다. 그런데 화물은? 대학 서고와 박물관 수장고, 공장 숙련자의 지식은 세관 신고서도 쓰지 못한 채 묵고 있다. 국가는 칩, 대학은 논문, 플랫폼은 클릭을 센다. 지식이 산업으로 몇 번 건너갔는지는 아무도 세지 않는다.
역사학이 좋은 예다. 학과는 위기라는데 유튜브에는 경차와 페라리의 일화까지 콘텐트가 밤새 돈다. 역사는 살아 있다. 주소를 박물관·게임·드라마·팬덤으로 옮겼다. 검증된 지식은 각주 속에서 굶고, 출처 잃은 서사는 광고를 먹는다. 문제는 수요가 아니라 통관이다.
예일대는 LUX로 답했다. 도서관·박물관·아카이브의 책·유물·기록 2000만여 건을 사람·장소·사건·개념의 관계망으로 엮었다. 책장을 온라인으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 지식에 송장을 붙인 것이다.
김지윤 기자
내가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도 “사람들은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통설은 매일 부도난다. 지식 탐험가는 찾던 답을 만나는 순간 각주 달린 장문도 끝까지 판다. 인간의 집중력이 짧아진 것이 아니다. 자기와 무관한 글이 길어졌을 뿐이다.
AI가 할 일은 인문학의 사료(史料)를 모델의 사료(飼料)로 갈아 넣는 것이 아니다. 주장·근거·출처·반론·불확실성을 구조화해 기계가 계산하고 인간이 다투게 하는 것이다. 계산으로 환원되지 않는 지식을 출처를 잃지 않고 학생·작가·기업·시민의 언어로 변주하는 것이다.
모델 성능이 평준화될수록 초과이익은 칩보다 신뢰할 수 있는 지식과 현장으로 이동한다. 논문은 종착역이 아니라 여러 산업으로 뻗어가는 출발점이다. 검증된 지식이 반복해서 쓰일 때 인문학은 보조금의 수혜자가 아니라 현금흐름의 원천이 된다. K컬처의 다음 수출품도 작품 한 편이 아니라 역사와 문명을 해석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트를 낳는 엔진일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AI 3강을 내걸며 질문 중심 수업과 서술형·논술형 평가를 함께 꺼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답을 빨리 고르는 인간은 AI의 하청이 된다. 출처를 묻고 반론을 세워 자기 설명을 만드는 인간이 AI의 원청이 된다. 정부가 할 일은 정답 배급이 아니라 지식이 산업으로 건너가는 공용 부두를 놓는 일이다.
AI 3강은 GPU를 세 번째로 많이 산 나라가 아니다. 지식이 원산지를 잃지 않은 채 가장 멀리 유통되는 나라다. 한국은 이미 칩의 항구를 가졌다. 이제 지식에 세관을 열 차례다. 다음 큰돈은 그 부두에서 하역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