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일, LA동양선교교회에서 명창 김원일 선생의 판소리 수궁가 완창이 있었다. 유휘찬 고수(鼓手)가 선생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서 득달같이 날아와 자리를 한층 윤택하게 하였다.
시니어센터에서 그의 판소리 강의를 듣게 된 인연으로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김원일 선생은 인생의 전환을 2번이나 겪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공학도에서 서양음악 전공자로의 변신이 첫 번째고, 40대 초반 성대결절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대금 소리에 매료되어 국악을 공부하게 된 것이 두 번째다. 그렇게 전통문화에 눈을 뜬 그는 판소리 학교 ‘우리소리’를 열어 우리 문화 전승에도 매진하고 있다.
수궁가는 한문 투의 단어에 중국 고사(古史) 인용이 많았다. 다행히 무대 뒤편 스크린에 영어와 한글 자막이 나와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지난해 뮤지컬로 만든 수궁가 영상을 LA한국문화원에서 관람한 적이 있다. 뮤지컬이 그렇듯 화려한 무대와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춤과 노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뮤지컬 수궁가는 줄거리만 따왔지 판소리 수궁가와는 전혀 다른 창작물이었다.
뮤지컬이 재미를 위한 것이라면 판소리는 선조들이 즐겼던 문화를 지금의 우리가 체험해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은 다른 기대감을 갖고 두 공연을 볼 것이다. 다만 재미를 추구하는 공연이 그 시대에서 끝난다면, 전통을 이어온 공연은 훨씬 생명력이 길 것이라는 점이다.
수궁가 완창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먼저 4시간이나 걸리는 큰일을 하려면 체력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대사를 모조리 외워야 한다. 하지만 그날 김 선생은 지치지 않고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며 여유 있게 공연을 이끌어갔다. 그날 김 선생의 등 뒤에 설치된 한글자막 화면은 그에게 큰 부담이 됐을 것이다. 관객들이 대사를 문자로 보고 있으니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임기응변으로 넘길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김 선생은 인사말에서 기력이 닿고 머리가 녹슬기 전에 서둘러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니까 10년만의 재도전인 셈이다. 전 좌석을 초대로 했으니 무료 공연이라 비용은 본인 사재를 털어 준비한 것으로 짐작됐다.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졌을 때 끝까지 남아있는 관객의 숫자가 많아 놀랐다. 장시간의 공연이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완창을 끝까지 지켜보는 일은 판소리에 대한 애정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그 모습은 판소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앞으로도 어려운 줄 알면서 책 한권 분량의 대사를 통째로 외우겠다고 나서는 지원자가 있을 것이며, 관객들은 낱말의 이해보다 판소리의 운율(韻律)을 쫓아 소리판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전통문화의 힘이다. 앞으로도 판소리는 살아남아 이 시대를 뛰어넘어 면면히 전승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김 선생은 공연을 끝낸 후 마치 임무를 완수한 사람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 순간 이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을 놓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너무 힘든 공연이라 LA에서 다시 판소리 완창을 들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전에 했던 도전했던 완창, 지금 다시 이뤘으니 10년 후라고 또 못하겠느냐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오늘의 성공에 힘입어 그가 또 한 번 완창에 도전하는 꿈을 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