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은 우리나라 암 발생률 3위다. 조기에 발견하면 생존율이 95% 이상이지만, 번거로운 검진 과정 때문에 암을 늦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혈액을 이용한 대장암 진단검사가 높은 성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대변을 채취하거나 대장내시경 검사 전 장을 비우는 기존 검진의 불편한 과정 없이 채혈만으로 대장암을 조기에 찾아낼 가능성이 열렸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팀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으로 대장암 환자와 정상 대조군 등 1677명을 분석한 결과, 대장암 진단 민감도가 90.4%로 나타났다고 27일 밝혔다. 대장암 환자 10명 중 9명을 정확하게 찾아냈다는 의미다.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은 혈액 속에 존재하는 암세포 유래 DNA의 특성을 분석해 암이 있을 가능성을 선별하는 검사다. 혈액에 떠다니는 DNA 조각 중 암세포에서 나온 것은 정상세포의 DNA와 길이와 절단 위치, 말단 구조 등이 다르다. 연구팀은 채혈한 혈액에서 세포유리DNA를 추출한 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으로 유전 정보를 읽고, DNA 조각의 특징과 유전체 분포를 AI 딥러닝 모델로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대장암 환자 302명과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이었다. 검사 결과 대장암 진단 민감도는 90.4%였다. 현재 국가 대장암 검진에 사용되는 분변잠혈검사의 민감도가 약 70~80%인 점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정상인을 정상으로 판별하는 특이도도 94.7%로, 정상인 100명 중 약 95명을 정확하게 가려냈다.
초기 대장암에서도 높은 진단 성능을 보였다.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였다. 수술하지 않고 내시경으로 제거할 수 있는 초기 대장암도 90%를 검출했다. 암으로 진행하기 전 단계인 진행성 대장용종의 민감도는 58.3%였다.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진행성 용종 민감도인 25~40%보다 높다.
(왼쪽부터)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 홍승욱 교수팀
현재 국가암검진에서 대장암 검사는 대변을 직접 채취하는 분변잠혈검사로 시작한다. 양성 판정을 받으면 장정결제를 복용해 장을 비운 뒤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한다. 검사 과정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보니 대장암 검진 수검률은 44.4%로 주요 암종 가운데 가장 낮다. 분변잠혈검사에서 양성이 나와도 대장내시경을 받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혈액검사가 상용화되면 간단한 채혈만으로 대장암 위험군을 1차로 선별해 검진 참여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국가검진 대상인 50세보다 젊은 20~40대에서 대장암 발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검진 접근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혈액검사에서 암이 의심되면 병변을 직접 확인하고 조직을 검사하거나 제거하기 위한 대장내시경은 받아야 한다.
변정식 교수는 “기존 검진 과정에서 느끼는 부담을 줄이고 혈액검사만으로 편리하게 대장암을 선별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대장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내시경 절제술로 치료할 수 있어 생존율과 치료 후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임상소화기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미국소화기학회지’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