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랫클리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을 공격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러시아가 유럽 동맹을 공격할 가능성에 선을 그으며 “그들(러시아, 우크라이나)은 종전을 원한다”고 주장한 것과는 온도 차가 큰 내용이다.
존 랫클리프 CIA 국장. 로이터=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현지시간) “랫클리프의 방문 내용을 보고받은 이들에 따르면 목적은 경고 전달이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는 처음 공개된 랫클리프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향후 몇 년 안에 나토 동맹에 대한 제한적 공격을 통해 나토의 (집단방위)의지를 시험하려 할 수 있다는 미 정보기관의 새로운 평가 이후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미 당국자들은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국내적인 압박도 심해지면서” 이런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며, 발트해 연안국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공격부터 소규모 지상 공격까지도 가능하다면서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이란전으로 미국의 일부 핵심 무기 비축량이 줄었다는 점도 푸틴의 계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WSJ는 설명했다. 특히 이란전 이후 미국에선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요격탄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랫클리프의 방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는데, 크렘린도 이를 확인했다. 크렘린은 랫클리프가 러시아 정보 당국자들과 협의했으며, 푸틴도 관련 내용을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WSJ의 보도는 전날 트럼프의 발언과는 상반되는 측면이 있다. 트럼프는 보수 성향 라디오 ‘글렌 벡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전쟁(우크라이나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제 뭔가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해 종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또 랫클리프의 방러와 관련해 푸틴이 나토의 대응의지를 시험하려 한다는 관측이나 영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 등에 트럼프는 “그 어느 것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한 최근 대이란 제재와 관련해 미국의 의지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는 소문에도 선을 그었다.
WSJ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가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발언을 한 건 대통령으로서 정보 사안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반면 이는 우크라이나전과 이란전 등 두 개의 전쟁 종식이 요원한 가운데 트럼프가 그저 희망적 사고를 표출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중간선거를 앞두고 보수당이 강점을 보여온 외교·안보 분야에서 위험 요소가 가중되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수차례 만나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돌파구로 삼으려는 듯한 언행도 이어가고 있지만, 김정은은 공개적으로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미 연합훈련 축소나 “북한이 강력한 핵무기 57개를 갖고 있다” 등의 발언이 보수 진영에서조차 동맹을 경시하고 비핵화 목표를 흐린다는 비판만 키우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 미 국무부 대변인은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비핵화인지 묻는 언론 질의에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미 당국자도 “미국의 정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확인했다.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을 유지한 건 북핵 제거 의지가 여전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