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26일(현지시간) 네팔 대홍수 당시 수도 카트만두 북서쪽을 흐르는 트리슐리강 수위가 9m(아파트 3층 높이)만큼 치솟는 데 걸린 시간(현지 통합산악발전국제센터(ICIMOD) 기준)이다. 중국 티베트와 맞닿은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 산악지대에서 시작된 홍수는 좁고 가파른 계곡을 따라 순식간에 마을과 도로, 교량, 발전시설을 휩쓸며 최소 36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무너져 강을 막은 뒤 고인 물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온난화로 약해진 빙하와 암반이 붕괴 위험을 키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원인은 네팔·중국 국경에서 발생한 대규모 빙하·암석 산사태다. 네팔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NDRRMA)은 이날 X(옛 트위터)에 플래닛랩스 위성사진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라수와가디 네팔·중국 국경검문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서 얼음과 암석이 무너져 렌데강에 토사가 섞인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렌데강은 티베트 국경 인근 히말라야에서 발원해 네팔 쪽으로 흐르는 작은 산악 하천으로, 하류에서 보테코시강을 거쳐 트리슐리강 수계로 이어진다.
산사태가 대홍수로 번진 과정은 임시 댐으로 설명된다. 비노드 파라줄리 네팔 수문기상국 홍수예보과장은 중국 당국에서 받은 사고 전후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얼음과 토사가 강을 막아 임시 호수가 만들어진 뒤 터진 흔적이 확인됐다고 현지매체 카트만두포스트에 밝혔다. 그는 “얼음과 토사로 일시적으로 호수가 생겼다가 터졌다. 댐이 만들어졌던 것”이라며 “맑은 물만 흘렀다면 이 정도 피해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잔 박타 카야스타 카트만두대 환경과학과 학과장도 CNN에 거대한 얼음 눈사태가 렌데강을 “몇 시간” 막았다가 터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산에서 떨어진 얼음과 바위가 강을 가로막아 물을 가뒀고, 이를 버티지 못한 임시 댐이 무너지면서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중국 티베트 지룽의 네팔·중국 국경 인근 계곡에서 거대한 진흙과 물이 건물을 덮치자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CCTV 화면 캡처. 로이터=연합뉴스
김경진 기자
빙하 붕괴의 배경에는 빠르게 따뜻해지는 히말라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니얼 슈거 미 캘리포니아대 지질학자는 CNN에 기온이 오르면서 녹은 물이 빙하와 암석 틈으로 스며들어 경사면을 약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기후위기는 이번 홍수를 일으킨 ‘임시 댐’의 재료인 빙하 자체를 점점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며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원인이 된 홍수는 2000년대만 해도 5~10년에 한 번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한 해에도 여러 차례 발생할 만큼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진호 서울대 미래혁신연구원 빙권과학교육연구센터장도 “지구온난화로 히말라야 빙하의 용융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며 “온난화가 지속되면 이 같은 대형 기후재난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ICIMOD는 “이번 재해에서 기후변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며 직접적인 인과관계에는 선을 그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대홍수 발생 전 네팔·중국 국경 인근 계곡의 모습(위)과 홍수가 덮친 26일 같은 지역의 모습(아래)을 비교한 위성사진. 로이터=연합뉴스
몬순(6~9월 여름 우기)도 급류의 규모를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네팔 수문기상국에 따르면 사고 당일과 전날 라수와 지역에는 폭우가 내리지 않았다. 다만 앞서 내린 비와 녹은 눈 때문에 강과 토양에는 이미 물이 많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산에서 쏟아진 얼음과 암석이 강물과 물에 젖은 토사를 휩쓸면서 급류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ICIMOD에 따르면 트리슐리강 갈치에서는 수위가 불과 30분 만에 최대 9m, 말레쿠에서는 7m 상승했다.
돌발홍수 전문가인 황석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은 “폭 100m 정도의 계곡에서 30분 만에 수위가 9m 올랐다는 것은 수영장 두 개에 소양강댐의 최대 방류량을 한꺼번에 밀어 넣은 것과 같은 수준”이라며 “그만큼 엄청난 양의 물이 짧은 시간에 쏟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데비가트에서 한 주민이 대홍수와 산사태로 진흙에 뒤덮인 도로를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슐리 바자르에서 주민들이 대홍수와 산사태로 진흙에 잠긴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사고 직후 거론된 ‘빙하호수 붕괴’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같은 지역에서는 빙하가 녹아 산속에 만들어진 호수가 범람하면서 홍수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성사진에서 홍수 경로 상류에 대형 빙하호수가 범람한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국제 연구진은 기존 빙하호수가 터졌다기보다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강을 새로 막았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초 원인으로 지목됐던 지진설도 뒤집혔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사고 직후 규모 4.4 지진으로 발표했던 진동을 추가 분석한 결과, 실제 지진이 아니라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계곡으로 무너지면서 발생한 규모 5.2 지진급 충격으로 정정했다.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빙하 붕괴 자체가 지진처럼 관측된 것이다.
지난 27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 트리슐리에서 대홍수로 건물과 주변 지역이 진흙에 뒤덮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7일 오후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네팔에서 359명을 넘어섰으며 중국은 3명이다. 실종자는 네팔에서 910명, 중국 558명으로 총 1468명이며, 이 중 외국인이 최소 700명 이상이다. 네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9명도 연락이 끊긴 상태다. “망고나무에 걸리지 않았다면 떠내려가 죽었을 것”이라는 현지 생존자의 증언도 속속히 나오면서 급류의 위력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티베트 국경 일대에서 네팔군이 대홍수와 산사태로 고립된 남성을 구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팔 라수와에서 구조대원들이 대홍수와 산사태 피해자를 옮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피해 지역에는 국제사회의 구호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이날 현지 기구와 구호단체를 통해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팔 남쪽과 국경을 맞댄 인도도 군 수송기를 이용해 의약품·식량·임시 거처용 물품과 구조장비 등을 네팔에 보냈다. 한국 정부도 실종된 한국인 수색과 현지 지원을 위해 외교부·소방청·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파견하기로 했다. 다만 도로가 끊기고 진흙이 쌓인 데다 일부 지역은 수위가 높아 구조 헬기조차 착륙하지 못하는 등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추가 홍수 위험이다. 장창궁 ICIMOD 기후·환경위험 담당 책임자는 홍수가 처음 시작된 렌데강 상류에 강을 막고 있는 잔해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두 번째 홍수가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추가 강우까지 예보되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27일 CCTV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산사태가 발생한 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지룽현 대부분 지역에는 오는 30일까지 약한 비에서 중간 정도의 비 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전망이다. 현지 기상 당국은 특히 저지대를 중심으로 강한 비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지적인 산사태와 홍수 등 2차 재해에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