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신이다 (Is God Is) 화재 생존 두 딸에게 내려진 어머니의 지시 스파게티 웨스턴과 그리스 비극 문법 결합 카라 영·말로리 존슨의 상반된 감정 연기
카라 영(왼쪽)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을 기대해 볼만하다. 라신의 폭발적인 분노를 연극적인 과장과 영화적인 사실성 사이에서 끌고 가는 그녀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이다. [Amazon MGM Studios]
알레셰아 해리스의 ‘Is God Is’는 복수극의 익숙한 문법으로 출발하지만, 그 길의 끝에서 복수의 쾌감 대신 불편한 질문을 남기는 영화다. 제목부터 문법을 이탈한다. “Is God Is” 주어와 동사의 위치가 뒤집힌 이 기묘한 문장은 논리적 진술이 아니라 일종의 주문처럼 들린다. 물음인가, 선언인가.
극작가 알레셰아 해리스가 자신의 동명 희곡을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이 장편 데뷔작은 제목만큼이나 장르의 경계를 비틀고 언어의 관습을 전복한다. 복수극이되 복수극이 아니고, 로드무비이되 여행의 목적지는 지리가 아닌 신화다. 스파게티 웨스턴과 그리스 비극 사이 어딘가에 기원을 둔 이 영화는, 자신이 무엇인지 끝내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되기를 거부한다. 총과 피, 황량한 도로와 폭력적인 남자들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총도 칼도 아니다. 부모에게서 자식의 세대로 물려진 분노다.
라신(카라 영)과 아나이아(말로리 존슨)는 쌍둥이 자매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으킨 화재에서 살아남았지만 몸에는 화상의 흔적이 남았다. 세상의 시선을 먼저 공격적으로 받아치는 라신과 그 시선 앞에서 움츠러드는 아나이아. 두 사람은 하나의 상처에서 태어난 서로 다른 감정처럼 보인다. 화상의 흔적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가시화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역사라는 것을 영화는 처음부터 분명히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어머니 루비(비비카 A. 폭스)에게서 편지가 날아온다. 모성의 각성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두 딸들에게 유언처럼 섬뜩한 명령을 내린다 서쪽으로 가서 아버지를 찾아 죽여라. 그리고 자신도 죽여라. 자매에게 어머니는 ‘God’이고, 아버지는 이름조차 없이 ‘Man’이다.
창조주처럼 딸들에게 폭력을 명령하는 어머니, 그 명령에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두 젊은 여성. 영화의 제목이 의미를 얻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Amazon MGM Studios]
창조주처럼 딸들에게 폭력을 명령하는 어머니, 그 명령에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두 젊은 여성이 순간 영화의 제목이 의미를 얻기 시작한다. 신의 명령이라면 그것은 정의인가. 그리고 그 신이 상처 입은 어머니라면, 딸들은 그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가?
창조주처럼 딸들에게 폭력을 명령하는 어머니, 그 명령에 따라 대륙을 횡단하는 두 젊은 여성이 도발적인 설정 안에서 영화는 제목에 함축된 신성과 모성, 그리고 심판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가장 작고 가장 폭력적인 단위 안으로 소환한다.
자매는 낡은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신은 신이다’는 로드무비이자 서부극으로 모습을 바꾼다. 두 여성이 폭력적인 남자를 추적한다는 설정에서는 ‘킬 빌’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그러나 해리스가 원하는 것은 복수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총을 쥔 여성의 통쾌함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총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촬영감독 알렉산더 다이넌의 카메라는 남부의 풍경을 세피아빛으로 물들이며 황야처럼 재구성한다. 과거 회상은 낡은 사진처럼 처리되어, 트라우마가 기억이 아닌 역사적 문서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풍경은 서부극의 황야이자 동시에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새겨진 공간이다.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갈수록 자매가 만나는 것은 한 남자의 과거라기보다 그가 남겨놓은 피해의 지도다. 설교자 디바인(에리카 알렉산더), 혀를 잃은 변호사 척 홀(마이켈티 윌리엄슨), 아버지 곁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앤지(자넬 모네이)와 두 아들.
한 남자의 폭력은 오래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몸과 기억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 스털링 K. 브라운이 연기하는 ‘Man’이 있다. 영화가 그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 사람인 동시에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얼굴로 기능한다. 반대로 어머니는 ‘God’이 된다. 남성이 신이고 여성이 그 명령을 수행하던 오래된 신화의 자리를 해리스는 뒤집어놓는다. 하지만 자리만 바뀌었을 뿐 폭력의 구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Is God Is’, 물음인가, 선언인가? 주어와 동사의 위치가 뒤집힌 이 기묘한 문장은 논리적 진술이 아니라 일종의 주문처럼 들린다. [Amazon MGM Studios]
‘신은 신이다’가 흥미로운 것은 라신과 아나이아가 같은 복수를 수행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 있다. 라신의 분노는 바깥을 향하고, 아나이아의 상처는 안으로 파고든다. 트라우마가 인간에게 남기는 두 개의 얼굴에 가깝다. 피해자가 총을 드는 순간 정의와 복수의 경계는 어디인가. 부모 세대가 시작한 폭력을 자식 세대가 대신 완성한다면, 그것을 응징이라 부를 수 있는가. 영화의 폭력은 갈수록 통쾌함을 잃는다. 처음에는 관객 역시 자매의 복수를 응원하지만, 여정이 계속될수록 해리스는 우리가 그들에게 부여했던 도덕적 면허를 조금씩 회수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카라 영과 말로리 존슨이다. 라신을 연기하는 카라 영의 분노는 영화 전체를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이고, 아나이아를 연기하는 말로리 존슨의 흔들림은 그 속도를 끊임없이 늦춘다. 한 사람은 불꽃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불꽃 뒤에 남은 화상처럼 존재한다. 두 배우의 얼굴 사이에서 ‘Is God Is’는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선다.
극작가 해리스 특유의 연극성도 살아 있다. 인물들의 과장된 말투와 돌출적인 유머, 갑작스러운 잔혹함이 사실주의의 경계를 흔들고, 자매의 내면이 화면의 글자로 떠오르기도 한다. 현실처럼 보이던 세계가 어느 순간 신화가 되고, 서부극이던 영화가 가족 비극으로 돌아온다.
해리스는 자신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 분노를 날것으로 쏟는 대신 양식화라는 그릇에 담아 더 오래 타오르게 한다. 장르를 빌리되 어느 하나에 안착하지 않는 태도가 이 데뷔작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다.
결국 영화가 묻는 것은 아버지가 죽어 마땅한가가 아니다. 폭력을 당한 사람에게 복수할 권리가 있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상처받은 어머니의 명령은 과연 정의일까.
복수를 완수한 자리에서도 신은 침묵한다. 영화는 그 침묵 속에 관객을 홀로 남겨두고 막을 내린다. 해리스가 바라보는 것은 그 불길이다. 복수의 끝에서 누가 이겼는지를 묻는 대신, 불이 지나간 자리에 누가 살아남았는지를 바라본다.
‘신은 신이다’에서 분노의 불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에게서 딸에게 옮겨붙고, 피해자의 몸에서 가해자의 손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잔혹한 유산은 화상도, 총도 아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상처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 등에서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