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여부를 놓고 본격적인 여론 수렴에 들어갔다. 수출시장 다변화와 공급망 안정 효과가 기대되지만, 높은 시장 개방 수준에 따른 농·어업계 반발이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제273차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중견국 간 연대를 강화하고 핵심 공급망 안정화 및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해 CPTPP 가입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와 의견 수렴에 본격 착수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2018년 출범한 CPTPP는 일본·호주·캐나다·영국·멕시코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참여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5%를 차지한다. 중국·인도네시아·아랍에미리트(UAE) 등 11개 국가도 가입을 신청한 상태다.
한국의 CPTPP 가입 논의는 문재인 정부 때부터 이어졌다. 당시 정부는 공청회 등 가입 신청을 위한 국내 절차를 밟았지만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와 농·어업계 반발 등이 맞물리며 국회 보고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이후에도 가입 논의가 이어졌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와 자국 우선주의 확산 등 통상환경이 급변하면서 정부 내에서는 CPTPP 가입 필요성에 다시 무게가 실리고 있다. CPTPP에 가입하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지 않은 멕시코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는데다, 일본에서도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보다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급변하는 통상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기업의 시장을 넓히며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일각에서는 이미 논의가 늦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이날 논의가 곧 가입 추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 장관은 “오늘 논의는 CPTPP 가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며 “가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본격적인 공론화와 의견 수렴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가입 신청을 추진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곧 가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농·어업계 반발이다. CPTPP는 다른 FTA에 비해 시장 개방 수준이 높은 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CPTPP 회원국의 농식품 분야 평균 관세철폐율은 96.3%에 달한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이날 성명을 내고 “농업 현장에선 CPTPP 가입을 ‘국내 농업의 사망선고’라고 한다”며 “농업 희생을 전제로 한 통상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이대로 CPTPP 가입을 추진하면 저지 투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이날 별도 자료를 내고 “CPTPP가 우리 농업계에 우려가 큰 사안인 만큼 핵심 이해관계자인 농업계와 충분한 소통을 거쳐 가입 추진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의견 수렴 과정에서도 농업인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겠다”고 밝혔다. 농식품부는 다음 달 농업인 종합단체와 품목별 생산자단체 등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고 의견 수렴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경제적 효과와 산업별 영향을 분석하고 농·어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실제 가입 추진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구 부총리는 “농·어업계 우려와 영향을 세심하게 살피고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며 “향후 가입을 추진할 경우 실효성 있는 국내 보완대책도 선제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