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동일본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던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이 한·일 메모리 반도체 투자의 새로운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최대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가 이와테현에 1조엔(약 9조원) 넘는 새로운 반도체 생산시설(팹)을 짓기로 한 데 이어 SK하이닉스도 인접한 미야기현을 해외 생산기지 후보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TSMC가 들어선 구마모토에 집중됐던 일본의 ‘반도체 부활’ 열기가 북쪽으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키옥시아는 “(이와테현에) 새로운 공장 건설과 관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27일 발표했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날 키옥시아가 이와테현 기타카미공장 부지에 세 번째 생산시설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샌디스크가 공동으로 1조엔(약 8667억원)가량을 투자하며 2029년 이후 가동이 목표라고 한다.
새로운 생산시설이 들어설 경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생성형 AI가 확산하면서 대규모 데이터를 장기간 저장하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키옥시아는 앞서 지난해 9월 가동한 기타카미 제2공장에서 지난달부터 제10세대 3차원 낸드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 다시 1조엔 이상을 투입해 제3공장까지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닛케이는 이번 투자가 한국 업체들을 따라잡기 위한 승부수로 해석했다. 키옥시아는 매출액 기준 세계 낸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용인과 청주에 2031년까지 총 54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청주는 낸드 생산거점이고 용인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D램을 생산한다.
한편 도호쿠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는 등 일본에서 지진 위험이 큰 지역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키옥시아가 지진 위험이 큰 도호쿠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것은 이미 조성된 산업 생태계 때문이다. 도호쿠에는 반도체 관련 기업이 460개 이상 몰려 있다.
2021년 2월 13일 오후 11시 8분쯤 일본 후쿠시마현 등 도호쿠 지역에 최대 진도 6강, 규모 7.1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중앙포토
미야기에는 도쿄일렉트론의 핵심 생산거점이 있고, 센다이의 도호쿠대도 반도체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에 강점이 있다. 기타카미공장 주변에는 첨단 낸드 생산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업체, 협력사뿐 아니라 전력·공업용수·교통망도 갖춰져 있다.
지진 위험은 설비로 보완 중이라고 한다. 기타카미 생산시설에는 기타카미시에서 진도 6 수준의 지진이 발생해도 내부 흔들림을 진도 3 정도로 낮추는 면진장치가 적용됐다. 2022년 후쿠시마현 앞바다 지진 당시 공장 인근에서 진도 5강이 관측됐지만 제조동 내부 흔들림은 진도 2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SK하이닉스도 미야기현을 해외 생산기지 후보 가운데 하나로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이치 정부는 반도체 산업을 중점 육성할 17개 전략 분야에 포함하고 국내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규슈의 TSMC와 홋카이도의 라피더스에 이어 도호쿠의 키옥시아까지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지도가 전국으로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